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自料 47
경주 화천리 양성자가속기 개발사업부지내(B구역)
慶州 花川里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 유적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 산 1번지 일원
▣ 조사기간 : 2009. 3. 23. ~ 2010. 12. 27.
▣ 조사면적 : 77,600㎡(Ⅰ구역-21,000㎡, Ⅱ구역-56,600㎡)
▣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李熙濬)
▣ 조사의뢰기관 : 경주시
Ⅱ. 調査經過
조사대상지는 경주시 도시과에서 추진하는 경부고속철도 신경주 역세권개발부지(4.6㎢)에 포함되어 2003년 10월 20일부터 2004년 1월 17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지표조사 결과, 총 32개소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후 양성자가속기 개발사업부지가 신경주 역세권개발부지 내에 결정됨에 따라 확인된 32개소의 유적 중 화천리고묘군1·2, 화천리와요지, 화천리유물산포지2·3 등 4개의 유적이 양성자가속기 1차사업부지에 포함되어 2008년 10월 20일부터 2009년 2월 16일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발굴조사를 추진하게 되었다. 발굴조사는 양성자가속기 개발사업의 원활한 추진과 조사단의 조사원투입 여건을 고려하여 A구역과 B구역으로 나누었으며, 우리연구원은 전체 발굴조사 대상지역 (117,900㎡) 중 B구역(77,600㎡)의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 지도위원회는 2009년 7월 조사의뢰기관의 요청으로 우선적으로 조사한 1차 조사구역(21,000㎡)이 제외된 2차 조사구역(56,600㎡)의 조사결과에 따른 유적의 보존·보호 방안에 대한 검토를 위해 실시하게 되었다.
Ⅲ. 遺蹟의 立地및 考古學的環境
조사지역은 행정구역상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산 1번지 일원으로 모량리와 화천리의 경계지점에 위치한다. 조사지역은 경주에서 대구방향의 경부고속도로 남쪽의 단석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와 구릉 사이의 곡부로 해발 60m~107m상에 위치한다. 구릉부는 조사구역 서편의 해발 120m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려 오면서 2개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에는 곡부가 형성되어 있다. 구릉부분은 일부 밤나무단지로 개간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임야이며, 곡부는 최근까지 계단상의 논과 밭으로 이용되었다.
조사구역이 위치한 건천읍 화천리는 영천에서 경주로 통하는 길목으로 동쪽으로는 율동, 서쪽으로는 건천읍 방내리·모량리, 남쪽으로는 내남면 비지리, 북쪽으로는 광명동과 접해 있다. 지형은 동쪽의 벽도산(해발 423m)과 서쪽의 단석산(해발 827m)에 둘러 싸여져 있으며, 그 사이에는 고천이 남에서 북으로 굽이쳐 흘러 대천과 합류하면서 형산강으로 유입된다. 동쪽과 북쪽은 고천과 대천에 의해 형성된 충적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상 조사구역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걸쳐서 다수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조사구역 동쪽으로 약 350m 떨어져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조사한 국도대체우회도로(효현-내남) 건설공사부지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조선시대 생활유적이 확인된 바 있으며, 남쪽으로 1.7㎞ 정도 떨어져 경부고속철도 공사구간에 포함되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화천리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Ⅳ. 調査方法및 層位
◆ 調査方法
현장에 대한 관찰과 주변유적의 성격파악 이후, Grid를 시굴조사시 설치한 트렌치의 설치방향과 평행·직교되게 50×50m 단위로 구획한 후 북서쪽을 1Grid라 명명하고, 총 44개의 Grid를 설정하였다. 각 Grid 사이에는 폭 2m의 둑을 남겼고, 조사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둑을 제거해가면서 조사하였다. 조사는 구획한 둑을 이용하여 토층상태를 파악하며 제토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Grid별로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전 상태를 촬영하고, 유구의 방향과 직교되게 둑을 설치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사내용, 주변현황 및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기록지 및 조사일지를 기록하고 조사완료된 유구에 대해서는 평·단면도 실측을 하였으며 이를 통한 유구배치도를 작성하였다. 사진촬영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하여 조사단계별로 하였고, 조사진행에 맞추어 적절한 시점에 기구 등을 이용하여 유적·유구에 대한 공중촬영을 실시하였다.
◆ 層位
유적은 구릉부와 곡부로 구분되는데, 구릉부는 표토층-(회)황갈색 사질점토층-황갈색 점토층-풍화암반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회)황갈색 사질점토층은 사면말단부와 구릉부에서 부분적으로 확인되며, 황갈색 점토층은 북쪽구릉 남사면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곡부는 표토층(경작층)-곡부퇴적층-풍화암반층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유물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유적 내 남쪽 습지층은 회갈색/흑갈색/암록색 니질점토층의 퇴적을 보이며, 부분적으로 암반부스러기가 다량 혼입된 사질점토층이 간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Ⅴ. 調査內容
이번 조사는 2009년 7월 경주시의 우선 공사실시 요청에 따라 조사완료후 해지한 1차 조사구역을 제외한 구역(2차 조사구역)에 대한 내용이다.
비교적 유구가 집중되어 있는 유적의 정상부와 남쪽 구릉부에는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생활·생산유구가 확인되어 조사중이며, 현재까지 유적 내에서는 청동기시대 유구 46기와 초기철기시대 유구 87기, 원삼국시대 유구 9기, 삼국시대 유구 30기, 통일신라시대 유구 30기, 고려·조선시대 토광묘 170기, 조선시대 기와가마 1기, 주거지 2기를 포함하여 총 375기가 확인되어 조사중에 있다
가. 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 유구는 주거지 43기, 구상유구 2기, 수혈유구 1기가 확인되어 현재 조사 중이다. 유구는 대부분 유적의 정상부 능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으며, 동쪽 사면을 포함한 일부 사면부에서도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은 무문토기 발, 호(옹), 대부소호 등의 토기류 101점과 일단병식석검, 석부, 석창, 석촉, 지석 등의 석기류 104점, 토제방추차 5점으로 모두 210점이 출토되었다.
1) 주거지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43기가 확인되었으며, 대부분의 주거지는 주축방향이 등고선의 방향과 평행하게 조성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세장방형과 방형 주거지도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장축 (224)~1284㎝, 단축 (79)~546㎝, 잔존깊이 10~80㎝이며, 면적은 (3.8)~70.1㎡ 이다. 내부시설로는 주혈, 노지, 벽구, 외구(8호), 저장공(32호) 등이 확인되었다. 주혈배치는 4주식(8·11·15호), 6주식(3·14호), 8주식(21호) 등이 확인되나, 대부분의 주거지는 주혈배치의 정형성을 찾기 힘들다. 노지는 지상식 혹은 수혈식 노지가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바닥은 대부분 풍화암반층을 굴착한 후 부분적으로 점토를 깔아 정지하였고, 불다짐 하거나 굴착면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도 확인되었다. 폐기방법으로는 내부에서 목탄과 소토가 다량 확인된 화재폐기가 있으며, 화재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주거지는 자연폐기된 것으로 판단된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는 발, 호(옹), 대부소호 등이 있다. 토기의 문양구성은 무문, 단사선문, 공열문, 구순각목문 등으로 구분되며, 이중구연의 경우 단사선문, 구순각목문과 조합을 이루고 있다. 6호 주거지에서는 공열문이 시문된 발이 확인되었다. 그 외 토제품으로 토제방추차가 출토되었다. 석기는 일단병식석검의 병부와(3호) 석창(15호), 일단경식 및 무경식석촉, 반월형(주형)석도, 주상편인석부, 유구석부, 지석, 연석, 박편, 미완성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5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석도는 파손된 후 구멍을 재가공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2) 수혈 및 구상유구
청동기시대 수혈은 2기가 확인되었으며 모두 유적의 북동쪽 능선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수혈의 평면형태는 부정형(1호), 말각방형(2호)이며, 규모는 길이 200~370㎝, 너비 275~415㎝, 잔존깊이 35~40㎝이다. 수혈의 내부에서는 석촉과 미완성석기가 출토되었다.
구상유구는 1기가 확인되었으며, 8호 주거지와 중복되어 있다. 규모는 길이 692㎝, 너비 240㎝, 잔존깊이 40㎝으로 평면형태는 호형이며, 내부에서 주혈 5개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나. 초기철기시대
초기철기시대 유구는 주거지 16기, 수혈유구 39기, 구 7기, 구상유구 18기, 주구형유구 4기, 폐기장 3기가 확인되었으며, 현재 조사중에 있다. 유구는 대부분 유적의 북사면과 남사면에 집중하여 위치하고 있고, 유물은 현재까지 287점이 출토되었다.
1) 주거지
주거지는 16기가 확인되었고, 위치는 북서쪽 구릉의 능선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어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는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구분된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대부분 부정형이며, 세장방형(1호)과 장방형(13호)도 일부 확인된다. 주거지의 규모는 장축(348)~618㎝, 단축(101)~542㎝, 잔존깊이 18~39㎝이다. 면적은 (4.6)~32.5㎡이다. 내부시설로는 노지(1호)와 주혈(1, 5, 6, 8호), 외구(1호, 5호)가 일부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바닥은 풍화암반층을 굴착한 후 굴착된 흙으로 부분적으로 정지하였다. 조사된 주거지의 폐기방법은 1호, 2호, 5호, 9호 주거지 내부에서 목탄이 확인되어 화재폐기로 보이며, 나머지는 화재흔적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 자연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원형점토대구연부편, 두형토기, 조합식파수, 석도 등이 확인되었다.
2) 구상유구
구상유구는 18기가 확인되었으며, 이중 13기가 조사되었다. 조사는‘—’자형 둑과 탐색Trench를 설정하여 퇴적양상을 확인하였고, 이를 기초로 평면제토하며 내부조사를 진행하였다. 구상유구는 대부분 북동쪽 구릉사면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弧形이며, 단면형태는‘U’자형이다. 규모는 길이 286~659㎝, 너비 53~249㎝, 깊이는 10~37㎝이다. 내부토는 대부분 풍화암반알갱이를 다량 포함한 황갈색사질점토(10YR 7/6)로 채워져 있었다. 내부시설은 주혈만 일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원형점토대토기와 두형토기, (조합)우각형파수편 등이 확인되었다.
3) 주구형유구
주구형유구는 4기가 확인되어 현재 조사중에 있으며, 유적의 최정상부에 위치한다. 조사는 4분할하여‘—’자형 둑과 탐색Trench를 설정하여 퇴적양상을 확인하였고, 이를 기초로 평면제토하며 내부조사를 진행하였다. 축조는 기반층인 풍화암반층과 갈색사질점토를‘U’자형으로 굴착하여 조성하였다. 1호 주구형유구는 평면형태는 원형에 가깝고, 단면형태는‘U’자형이다. 구 내부에는 소토가 남서쪽 내측을 따라 확인되는데, 소토 내부에서 초본류가 확인되어 점토와 초본류를 섞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중앙부에는 할석이 일부 확인되고 있으며, 남쪽에 치우쳐 소토가 원형으로 확인된다. 3·4호 주구형유구는 북쪽 부분은 삭평으로 인해 대부분 잔존상태가 양호하지 않다. 2·3·4호 주구형유구는 평면형태는 원형에 가깝고, 단면형태는‘U’자형이다. 1호 주구형유구와 마찬가지로 소토가 내측을 따라 확인되고, 소토 내부에서 초본류가 확인되어 점토와 초본류를 섞어 만들었다. 특히 소토와 붙어있는 아랫면의 색토는 등색인 경우가 있는데, 이는 환원작용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1호주구형유구와 달리 소토가 부분적으로 일부만 확인되고 있으며, 단절된 구간이 확인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단절된 구간은 출입구로 보인다. 아울러 돌무더기가 부정형으로 2군데에서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현재 원형점토대구연부와 저부, 방추차 등이 일부 확인되었다.
다. 원삼국시대
유적에서 확인되는 원삼국시대 유구는 목관묘 8기, 옹관묘 1기가 확인되어 현재 조사중에 있다. 목관묘는 유적의 남사면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고, 등고선과 평행하게 축조되어 있다. 목관묘는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치하며, 옹관묘는 1·2호 목관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목관묘와 옹관묘의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이며, 단면형태는‘U’자형에 가깝다. 유물은 현재까지 2점이 출토되었다.
라. 삼국시대
유적에서 확인되는 삼국시대 유구로는 주거지 5기, 건물지 2기, 수혈유구 8기, 기와가마 9기, 기와공방지 1기, 구 4기 등이 있다. 유구는 유적의 남사면 하단부에서 벗어나지 않고 밀집되어 조성되어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기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 수혈유구
수혈은 총 8기가 확인되었으며, 조사구역의 구릉정상부 쪽 초기철기 주거지를 파괴하고 축조된 1기를 제외하고 모두 기와가마가 주로 분포하는 남서쪽 사면 가까이에 축조되었다. 평면형태는 대다수 부정형을 띠고 있다. 규모는 길이 150~380㎝, 너비 104~140㎝, 깊이 10~30㎝ 정도이다. 내부시설은 6호의 경우 주혈 3기가 확인되었고, 7호의 경우 주혈 1기와 원형의 소토범위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수막새, 암키와, 수키와, 토기편 등이 확인되었다.
2) 기와공방지
기와공방지는 1기가 확인되었으며, 기와가마가 위치하는 남서쪽 구릉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등고선과 평행하게 축조되었으며, 하단부는 후대 경작에 의해 삭평된 채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하단부가 후대경작으로 일부 삭평되어 파악할 수 없다. 규모는 길이 3,350㎝, 잔존너비 600㎝, 깊이 25㎝ 정도이다. 내부에는 3기의 구와 다량의 주혈이 확인되며, 구의 서쪽 일부에서 기와가 열을 지어 놓여진 채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암키와, 수키와, 인화문토기편, 대부완, 연질토기편 등이 확인되었으며, 기와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기와공방지에서 확인된 3기의 구는 배수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앙부에 위치한‘∩’자형의 구 내부에서 기와를 열을 지어 놓은 점은 배수를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3) 기와가마
유적에서 확인된 기와가마는 모두 구릉의 사면부에 조성되어 있으며, 완만한 남동사면부와 비교적 경사가 심한 북동사면부에 나뉘어 위치한다.
현재 유적의 남동사면부에서 삼국시대 기와가마 9기가 확인되어 조사중이고, 북동사면부에서는 통일신라~조선시대 기와가마 12기를 확인하였다. 이처럼 유적에서 기와가마는 총 21기가 확인되어 조사중에 있고, 남동사면부와 북동사면부 2곳에 군집을 이루며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조사가 어느정도 진행된 남동사면부의 삼국시대 기와가마를 중심으로 다루려고 한다.
(1) 입지 및 축조순서
유적의 남사면부와 평지가 만나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곳에 삼국시대 기와가마가 확인되어 조사중이다. 최초 가마는 비교적 완경사의 낮은 산지에 조성되어 있었고, 확인된 유구의 아래쪽에는 타원형의 수혈이 있는데, 이는 서쪽 계곡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수로를 일시적으로 막아 집수장의 용도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조시간이 긴 남사면부에 유구를 조성하는 등 가마의 이론상 입지요건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구는 해발 69~72m 정도에 1~8호가 집중해 조성되어 있고, 68m에 9호가 조성되어 있다. 주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되어 있다. 1~3호 가마와 4~6호 가마는 곡부를 사이에 두고 2기씩 서로 나란하게 위치하며, 5호 가마 서쪽으로는 7호, 8호가 인접하여 위치한다. 9호는 남서쪽으로 22m가량 떨어진 지점에 단독으로 조성되어 있다.
축조순서는 곡부에 위치한 가마는 사면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2기씩 나란하게 축조되는 양상이다.(가마3,6호→ 2,5호→ 1,4호). 또한 7호 가마의 회구부 상면에 8호 가마가 조성된 점으로 보아 7호(先)→8호(後)가 조성되었다.
(2) 구조
유구는 갈색 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되었다. 요체의 일부가 지하에 위치하는 반지하식 구조이다. 소성실과 연소실 사이에 경사가 완만하고 높이가 20㎝ 정도의 비교적 낮은 단벽을 설치하였고 소성실에 계단시설이 형성되지 않은 유계무단식 평요이다.
배수구는 9호를 제외한 가마 모두에서 확인된다. 유구는 경사진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어 외부로부터 우수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가마 주체부를 둘러싼‘∩’자상의 배수구를 축조하였다. 배수구 규모는 너비가 160~400㎝, 깊이가 20~50㎝ 정도이고, 단면형태는 완만한‘U’자형을 띠고 있다.
가마 세부구조는 다음과 같다.
① 소성실
소성실은 기와를 적재하여 소성하는 가마의 중심부분이다.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구의 평면형태는 선저형이며, 규모는 길이가 420~570cm, 너비가 182~274cm 정도이다. 소성부 바닥면에는 별다른 시설이 마련되지 있지 않은 무계단식 구조로 바닥은 비교적 편평하다. 6°~11°의 바닥경사면을 이루며 형성되었다.
② 연소실
연소실은 땔감을 쌓아 불을 지피는 곳으로 연료의 연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연소실의 평면형태는 역제형을 띠며 아궁이 쪽으로 올수록 폭이 급격이 좁아진다. 아궁이와 연소실의 연결 단면상태는 외고내저형의 구조를 띤다. 소성실과 연소실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20㎝정도 깊이의 비교적 낮고 경사가 완만한 단벽이 확인되었다. 단벽은 생토면을 굴착하여 사용하다가 그 위에 점토를 덧발라 보수하여 사용한 방식이 확인되었다.
③ 아궁이
연료의 공급 및 기물의 출납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가마의 입구에 해당한다. 7·8호 가마만이 점토+기와 등을 이용하여 구축하였고, 7·8호 가마 외에는 기반토를 그대로 굴착하여 이용하였다. 아궁이 부분의 너비는 70~90㎝ 가량이다.
④ 요전부
요전부는 번조와 소성제품의 반출입 및 적재 등의 작업을 위해 확보된 공간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가마의 장축방향과 동일하게 축조되었다.
요전부에서 회구부로 이어지는 부분에 가마 장축방향과 동일하게 수키와를 일렬로 연결하여 놓은 양상이 4~6호 가마에서 확인되는데 이는 배수구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양상은 경주 방내리유적 8호 가마에서 유사한 양상이 확인되었다.
⑤ 연도
8·9호 가마에서만 확인된다. 8호는 연도가 3개인 다연도이며, 연도의 모양에 맞게 와편을 놓고 점토를 덧대어 만들었으며, 조업시 발생한 고온에 의해 회청색으로 단단하게 환원소결되었다. 9호는 소성실 상부에 1개의 연도를 가진 단연도이다. 구조는 소성실 끝단에서 약한 둔각을 이루며‘ㄴ’자형으로 오르고 있다.
다연도의 예로는 부여 정암리 2호 가마, 일본의 中通 A-2호 가마가 있다.
마. 고려·조선시대
경주 화천리 유적에서 조사된 토광묘는 1차 조사구역(B구역)에서는 29기가 조사되었고 이번 2차 조사구역(B구역)에서는 141기가 조사되어 모두 170기의 토광묘가 조사되었다. 그리고 북쪽 구릉사면(A구역)을 조사한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는 169기가 조사되었다.
B구역에서 조사된 토광묘 170기 중 96기에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유물은 토도류 39점과 금속류(관정제외) 134점, 기타 6점 등 총 179점이 출토되었다.
1) 토광묘
경주 화천리 유적에서 조사된 토광묘는 대부분 능선의 정상부에서 사면을 따라 조성되어 있으며 일부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또는 기와 가마와 중복되어 확인되기도 하였다. 토광묘는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조성되는 경향을 보이며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되도록 축조하였고 피장자의 두향은 대부분 정북방향과는 관계없이 구릉의 정상부 쪽을 향하고 있었다.
먼저 1차 조사구역(21,000㎡)에서는 토광묘가 29기가 조사되었다. 이중 북쪽 구릉에서는 5기가 드문드문 배치되어 조성되어 있었으나 그 아래 남쪽구릉에서는 소군집을 이루며 등고선과는 직교하면서 두향은 북서향이다.
2차 조사구역(56,600㎡)에서는 현재까지 조사된 토광묘는 141기이다. 이중 북동쪽 구릉에서 소군집을 이루며 등고선과는 직교하면서 두향을 서향을 보이는 토광묘가 20기가 조사되었으며 2차 조사구역의 능선 사면을 따라서 대군집을 이루며 등고선과는 역시 직교하며 두향은 북인 토광묘가 121기가 조사되었다.
화천리 유적의 토광묘는 대체적으로 묘광을 어느 정도 구축하고 목관을 안치하는 토광목관묘와 별다른 시설 없이 그대로 매납한 토광직장묘로 나누어진다. 이는 목관에 사용된 관정의 출토와 묘광 바닥에서 확인되는 관재 부식흔으로 확인하였다. 또, 관정은 출토되지 않으나 부식흔이 남아있는 토광묘는 결구식의 목관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출토되는 유물을 살펴보면 토도류가 9점이고, 자기는 모두 28점이 출토되었다. 금속류는 125점으로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청동숟가락은 현재 모두 80점이 출토되었고 시부의 평면형태는 시부가 타원형 또는 유엽형이며, 병단부의 평면형태는 연미형, 어미형, 반원형, 능형 등 다양하게 확인되었다. 젓가락은 모두 2매가 출토되어 대부분 완형으로 모두 청동숟가락과 한 벌로 set를 이루어 출토되었다.
청동용기로는 청동발(합) 4점, 청동완이 1점 출토되었다. 청동발(합)을 기형에 따라 크게 분류하면 뚜껑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그리고, 대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었다.
판상철기는 29점이 출토되었고 철겸은 7점이 출토되었다. 이들 대부분이 묘광 중앙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대부분이 판상철기이며 일부 철겸 6점, 곡형철기 1점 불명철기 6점 등 농기구도 출토되었다. 이처럼 철기류가 묘광 중앙바닥에 매납되는 것은 주술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판상철기나 철겸의 매납 의도는 비슷하다고 판단된다.
철제가위는 3점이 출토되었으며, 형태에 따라 ∝字형과 ×字형으로 구분된다. 43호, 73호, 134호 토광묘에서 각각 출토되었으나 134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가위는 부식이 심해 수습이 불가능하였다.
Ⅴ. 調査結果및 意義
1. 현재까지 진행된 조사에서 청동기시대 46기, 초기철기시대 87기, 원삼국시대 9기, 삼국시대 30기, 통일신라시대 30기, 고려·조선시대 173기의 유구가 확인되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 대부분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볼때 중심시기가 청동기시대 전기임을 알 수 있으나, 3·7·35호 주거지에서처럼 일단병식 마제석검의 병부와 유구석부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후기에 이르는 늦은 시기의 주거지도 유적 내에서 확인된다.
3. 유적 내에서 조사된 초기철기시대 주구형유구는 유적의 정상부에 별도로 떨어진 1개소를 제외하고는 3개소가 모여 확인되어 조사하였다. 이와 유사한 유구가 최근 울산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확인되고 있는데 주거지, 무덤, 저장시설, 의례유구 등의 다양한 해석이 있다. 정상부에 위치하여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축조되었고, 내부에서 소토가 확인되었으며 적석이 2군데 정도에서 확인되고 있어 의례유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유구가 1개소가 아니라 4개소가 집중하여 있고, 유구 안쪽에 어떠한 시설도 확인되지 않고 있어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
4. 유적의 남사면부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기와가마는 유적의 남사면부에서 총 9기가 확인되었는데, 기와가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연소실과 소성실 사이에 형성되는 단벽이 20㎝ 미만으로 삼국말에서 통일기로 접어드는 시기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기와만을 소성하는 기와전용요임을 확인하였다. 특히 8호 기와가마에서는 다(삼공)연도가 형성되어 구조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국내에선 부여 정암리 기와가마 이후 확인되지 않던 다연도 시설을 갖춘 가마라는 점에서 가마구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삼국시대 기와가마에서 출토되는 평기와는 그 규모가 길이 55㎝, 두께 4㎝, 무게가 15㎏에 육박하는 초대형 기와로 최근 토지박물관에서 조사한 남한산성의 통일신라 대벽건물지에서 출토된 기와(길이 64㎝, 무게 20㎏)와 중국 시안에서 발굴된 한나라시대의 길이 57㎝의 기와보다는 작지만 그에 버금가는 초대형이다. 유적에서 출토된 수막새 대부분은 고신라시대 연화문 수막새의 특징인 단판형식이며, 꽃잎이 고부조로 높게 표현되어 제작되었다. 막새의 형태는 634년 창건된 분황사의 것과 흡사하여 가마의 조업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5. 경주 화천리 유적에서는 A구역(169기)과 B구역(170기)에서 339여 기의 토광묘가 군집을 이루며 확인되었으며, 토광묘는 무덤의 중복도 거의 없는 편이고 특별한 군집성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지역의 분묘는 혈연관계에 의한 묘역이 아닌 인근 지역 주민들의 공동묘지로 판단되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인 묘역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경주지역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분묘유적이 많이 조사되었다. 이들 유적간의 비교 연구를 통해 고려시대 이후 경주지역 나아가 영남지방에 대한 당시 사회 문화상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
|
|
유적원경(동→서)
|
|
 |
|
|
|
유적위치 및 주변유적 분포도
|
|
 |
|
|
|
유적위치도
|
|
 |
|
|
|
시대별 유구 및 유물현황
|
|
 |
|
|
|
유적 정상부 청동기시대 주거지 전경
|
|
 |
|
|
|
청동기시대 주거지
|
|
 |
|
|
|
주거지 속성표
|
|
 |
|
|
|
초기철기시대 주거지
|
|
 |
|
|
|
주거지·구상유구 제원 및 출토유물 현황표
|
|
 |
|
|
|
유구배치도
|
|
 |
|
|
|
초기철기시대 주구형유구 전경 및 세부
|
|
 |
|
|
|
주구형유구·수혈·기와공방지 제원·출토유물현황표
|
|
 |
|
|
|
삼국시대 기와공방지 전경 및 세부
|
|
 |
|
|
|
삼국시대 기와가마 전경 및 세부
|
|
 |
|
|
|
다연도
|
|
 |
|
|
|
기와가마 속성표
|
|
 |
|
|
|
고려·조선시대 토광묘 전경
|
|
 |
|
|
|
토광묘 조사전경
|
|
 |
|
|
|
시대별 출토유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