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達城 竹谷里遺蹟 發掘調査 달성 죽곡리유적 발굴조사

시대 통일신라,고려,조선
성격 경작,분묘
회수 7
개최일자 2008.12.23
조회수 3,764

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自料 44


대구 죽곡2 택지개발사업지구 내
達城 竹谷里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 유 적 위 치: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107번지 일원
▣ 조 사 기 간:2008년 5월 7일∼2009년 6월 9일
▣ 조 사 면 적:24,711㎡(Ⅰ구역-23,673㎡, Ⅱ구역-1,038㎡)
▣ 조 사 기 관:(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李熙濬)
▣ 조사의뢰기관:대구도시공사

Ⅱ. 調査經過

이번 조사는 대구도시공사에서 시행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107번지 일원의 택지개발사업지구에 대한 발굴조사이다. 이 지역은 대구도시공사의 조사의뢰로 2005년 9월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한 이후 그 결과에 근거하여 발굴(시굴)조사를 진행중에 있다. 본 연구원은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허가사항(허가 제2007-135호)에 따라, 2007년 8월 17일부터 시굴조사에 착수하여 택지개발사업지구 내에 고려시대 경작유구(Ⅰ구역)와 통일신라시대 석실묘·조선시대 토광묘(Ⅱ구역)가 분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2008년 5월 7일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조사대상지역 중 분묘유구가 조사된 Ⅱ구역은 대구도시공사에서 우선공사 착수의 필요성을 제기함에 따라 조사완료 후 Ⅱ구역(토목계획팀-1476, 2008. 8. 4)에 대한 자문위원회(2008. 9. 12)를 개최하여 우선공사 실시에 협조하였고, 현재 경작유구가 확인된 Ⅰ구역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Ⅲ. 遺蹟의 立地및 考古學的環境

조사대상지역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일원으로 죽곡1리 마을 일부와 마을의 동쪽에 펼쳐진 죽곡들이 해당된다. 조사지역과 인접하여 30번 국도가 동-서향으로 지나가며, 대구 지하철 2호선 대실역이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까지 이곳은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었으며 일부는 임야 및 건축물이 조성되어져 있었다.
조사대상지역의 입지를 살펴보면 북쪽에는 城山(180m)이 위치하고 있고, 서쪽에는 竹谷山(195.8m)이, 북동쪽에는 朴山(215.4m)과 弓山(250.9m)이 위치하고 있다. 그 사이로 금호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굽이쳐 흘러 죽곡산의 남쪽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데 금호강은 심한 사행을 보이는조사지역 북쪽의 세천리 지역을 통과하면서 거의 직류하천에 가까운 성격으로 변모한다. 하천의 서편에는 기반암의 급사면부로 구성된‘cut bank’를 형성하나 동편을 따라서는 대상의 충적평야를 발달시킨다. 조사대상지는 금호강변 서쪽에 위치하며 금호강의 범람으로 이루어진 배후습지성 충적지에 해당한다.
죽곡리는 대구에서 성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는데, 죽곡리의 남쪽에 흐르는 낙동강 북안에는 강정나루터가 위치한다. 조사대상지의 서쪽 연접한 곳에는 죽곡리고분군과 죽곡리산성이 위치한다. 이 곳은 1994년과 2006년에 대구대학교박물관과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산성과 고분군의 일부가 조사되어 대구 일원에 대한 5·6세기의 지역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조사대상지의 북쪽에는 2005년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된 죽곡리 9-2번지유적이 위치하는데, 이곳은 죽곡1 택지개발조성부지로서 조사결과 삼국시대 도로유구,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우물, 경작유구(田畓) 등의 생활유적이 조사되었다. 이렇게 조사대상지의 주변에는 분묘와 관방유적, 생활유적 등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Ⅳ. 調査方法및 層位

▣ 調査方法
현장에 대한 관찰과 주변유적의 성격파악 이후, Grid를 시굴조사시 설치한 트렌치의 설치방향과 평행·직교되게 50×50m 단위로 구획하였다. 북서쪽을 1Grid라 명명하고,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순번을 매겨 총 8개의 Grid를 설정하였다. 각 Grid 사이에는 폭 3m의 둑을 남겼고, Grid내 25m 지점에도 폭 1m의 둑을 십자상으로 남겼다. 동쪽과 서쪽 12.5m 지점에 다시 남-북상의 둑을 남겨 토층파악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조사는 구획한 둑을 이용하여 토층상태를 파악하며 제토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Grid별로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전 상태를 촬영하고, 유구의 방향과 직교되게 둑을 설치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사내용, 주변현황 및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기록지 및 조사일지를 기록하고 조사완료된 유구에 대해서는 평·단면도 실측을 하였으며 이를 통한 유구배치도를 작성하였다. 사진촬영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하여 조사단계별로 하였고, 조사진행에 맞추어 적절한 시점에 유적·유구에 대한 공중촬영을 실시하였다.

▣ 層位
유적 전체의 층위를 상층부터 살펴보면 3m 정도의 매립층을 제거한 이후의 층부터는 하상퇴적층으로 갈색사질점토층과 황갈색 사질점토층, 흑갈색 사질점토층이 순차적으로 퇴적되어 있다. 이 층들은 모두 경작과 관련이 있는 층이지만 금호강의 범람으로 인해 밭고랑이나 논둑과 같은 경작과 관련한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표토 아래 약 1.5m에서는 폭 10㎝ 정도의 흑갈색의 니질토 띠가 확인되는데, 이 띠층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레벨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유적의 남동-북서방향으로만 확인되는데 그 외 남서쪽 부분에서는 교란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는다. 이 층아래에서만 밭경작유구가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유적의 남서쪽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유적 전체에서 밭경작유구가 확인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흑갈색 층의 바로 아래에는 사질성분이 덜한 갈색사질점토층이 10㎝ 정도 퇴적되어 있고, 그 아래층은 사질성분이 강한 갈색사질점토층으로 유구가 형성되어 있는 기반층이다. 이 두 층은 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세한 차이를 가진다.
유구가 형성되어 있는 층 아래 50㎝ 정도부터는 흑갈색의 니질토층이 퇴적되어 있다.

Ⅴ. 調査內容

전체 택지개발사업부지 내 북쪽 중앙부에서는 경작유구가, 서쪽 구릉사면에는 분묘유구가 확인되어 구역을 나누어 조사하였다. 먼저 분묘유구가 확인된 곳은 조사완료하였고, 현재 경작유구가 확인된 구역을 조사중이다.
현재까지 유적 내에서 조사완료 된 분묘유구 3기(통일신라시대 석실묘 1기, 조선시대 토광묘 2기와 고려시대 경작유구 3개소가 확인된 상태이다.

▣ 경작유구
서쪽 구릉의 말단부와 하천 주변에 형성된 배후습지성 충적지에 해당한다. 이를 중심으로 볼 때 구릉 말단부인 서쪽부에서 조사대상지 중심부까지는 지형이 비교적 편평하게 이어지다가 금호강변인 동쪽으로 갈수록 지형이 높아진다. 또한 2Grid와 4Grid에서는 급격한 경사면을 형성하는 부분도 있으며,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는 약 2m 정도이다. 이러한 지형적인 특성으로 볼 때 유적의 동쪽은 자연제방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조사대상지역의 북쪽(1ㆍ2Grid)과 남서쪽(5Grid)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현지표(매립층 포함)에서 약 5~6m 아래에서 경작유구가 확인된다.
유적에서 유구는 해발 15.5~17.5m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층에는 암갈색(10YR 3/4)사질점토가 약 10~15㎝ 정도로 퇴적되어 있고, 그 아래 약 10~20㎝에 퇴적되어 있는 갈색(10YR 4/4)사질점토층에 회황갈색(10YR 4/2)사질점토의 내부토를 가진 경작유구가 확인된다.
전부 3개소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은 지형과 등간격으로 연속된 고랑을 통행로로 이용하기 위해 고랑이 단절된 부분이 유적 내에서 두 군데 정도 확인되는데, 이를 따른 것이다.

▣ 분묘유구
분묘유구가 확인된 구역은 택지개발사업부지 중앙부에서 서쪽 산지 구릉사면에 위치한다.
조사된 유구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실묘 1기와 조선시대 토광묘 2기이다. 석실묘와 토광묘 1호는 서로 중복되어 조성되어 있었는데, 석실묘가 구릉사면에 선축조되었고, 이후 조선시대 토광묘 조성으로 대부분 훼손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사결과 석실묘는 벽석일부와 시상일부만 잔존한 상태였고, 토광묘는 2기 모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토광묘의 축조방법은 2기 모두 유사하다 할 수 있으나 토광묘 1호는 2단의 석축열을 돌리는 등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출토유물은 석실묘에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인화문토기 개 및 완 3점이 주변 교란지역에서 확인되었다.

Ⅶ. 調査成果및 意義

1. 금번 조사에서 확인된 밭경작유구는 그 면적이 수천평에 달해 대구지역에서 조사된 고대밭유구로서는 최대규모이다. 이는 달성 죽곡리 일원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활발한 경제활동을 유추하게 해준다. 아울러 타지역에서 조사된 동일성격 유구와의 비교자료로서 고대인의 밭농사 풍경을 복원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2. 유적 내에서 조사된 밭경작유구는 총 3개소로 모두 유적의 동-서방향으로 진행한다. 유구는 상면이 삭평되어 현재 고랑만 확인되는데, 고랑의 폭은 20~40㎝ 정도이고, 길이는 20~80m에 육박한다. 경작유구 내부에서 고려시대 토기편이 확인되었고, 구지표에서 소량이지만 청자편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경작시기를 알 수 있다. 또한 유구의 단면상태를 통해 당시 起耕法에 대한 추론도 가능해졌다.

3. 유적 내 토층 퇴적양상은 동편에 위치한 금호강의 지속적인 범람과 연결시켜 볼 수 있겠다. 이는 유구가 확인되는 층 이외에 상부퇴적토에서도 미세한 모래알갱이가 포함된 띠층과 고랑처럼 보이는 흔적 등이 부분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고려시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경작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유적이 위치한 지점이 낙동강과 합류되는 금호강하류이다 보니 유수의 역류에 의한 범람도 잦았을 것이므로, 논경작 보다는 밭경작이 주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4. 유적의 지형은 서쪽에서 동쪽,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갈수록 지형이 1m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 유적의 중심에서 금호강쪽으로, 또 남서쪽의 산지로 갈수록 지형이 높아진다는 것인데, 경작이 이루어졌던 당시 유적의 원지형을 복원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유적내 남서에서 북동향으로 크게 두 번 정도 단층현상이 확인되는데 이는 2004년 대구지역에서 일어난 두 번의 지진과 관련지어 볼 수 있겠다.

유적원경(남동→북서)
유적위치도
유적위치 및 주변유적 분포도
유적원경
Grid 구획도(조사진행순서)
토층 전경 및 세부
유적 토층개념도(토층사진A)
유적전경
유구배치도
3G 경작유구(밭) 세부평면도 및 단면도
경작유구 전경
경작유구 전경 및 세부
분묘유구(석실묘·토광묘 전경 및 세부)
경작유구 분석 및 단층현상
경작유구(밭) 조사분포도(청동기~조선시대)
시대별 밭유구 확인 유적(청동기시대)
시대별 밭유구 확인 유적(삼국시대)
시대별 밭유구 확인 유적(삼국·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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