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慶山 新垈里遺蹟 發掘調査 경산 신대리유적 발굴조사

시대 원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근대
성격 분묘
회수 5
개최일자 2008.02.21
조회수 3,968
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資料 42


경산 신대-부적지구 도시개발사업부지내
慶山 新垈里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유적위치 : 경북 경산시 압량면 신대 · 부적리 일원
2. 조사기간 : 2006년 3월 2일~2008년 6월 2일(824일간)
3. 조사면적 : 104,490㎡
4.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이희준)
5. 조사의뢰기관 : 경상북도개발공사

Ⅱ. 調査經過

경산 신대리 유적 조사는 경상북도개발공사에서 추진하는 도시관리계획 주거지역과 관련한 사업에 따른 형질변경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3년 9월 8일부터 9월 27일까지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후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2005년 4월 18일부터 동년 9월 9일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목관묘와 옹관묘를 비롯한 다수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발굴조사는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6년 3월 2일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고, 2006년 9월 16일, 2007년 3월 2일에 1 · 2차 지도위원회를 개최한 바 있다. 현재 원삼국시대 목관묘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Ⅲ. 遺蹟의 立地와 考古學的 環境

경산 신대리 유적은 행정구역상 경산시 압량면 신대리 · 부적리 일원에 해당하며, 남천면과 경산시내를 지나 금호강에 합류하는 남천과 오목천의 상류인 관란천에 의하여 형성된 남천분지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조사지역은 해발 50~60m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적 일대의 지질은 중생대에 형성된 사암과 세일 계통의 암반인 관계로 잘 부서지고 침식이 쉽게 일어나 내부가 저하되어 분지가 형성된 곳으로, 한국의 지형구 중 태백산맥군 영남분지의 대구분지에 해당한다.
유적 주변의 고고학적 환경을 살펴보면, 남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동쪽에는 압량리고분군, 내리고분군, 내리유적, 서쪽에는 조영동무문토기유적, 부적리고분군, 조영동고분군, 임당동유적, 북쪽에는 압량리 유적, 압량리 유물산포지Ⅰ 등이 위치하고 있다.

Ⅳ. 調査內容

가. 層位
신대리유적은 해발 51~61m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으로부터 이어지는 주능선에 동쪽으로 2개, 서쪽으로 2개의 가지능선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유적의 층위는 10~30㎝정도의 표토층과 그 아래로 황갈색 사질점토층, 적갈색 사질점토층, 암반층 순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유적의 대부분에서 표토층 아래에서 암반층이 확인된다. 유구는 원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확인되지만, 원지형의 삭평으로 시기와 상관없이 황갈색 · 적갈색 사질점토층과 암반층에서 모든 유구가 확인된다.

나. 遺構
신대리유적은 원삼국시대 목관묘와 옹관묘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석곽 · 석실묘, 고려시대 석곽 · 토광묘, 조선시대 토광묘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수는 604기이며 출토된 유물수량은 약 1,359점이다.

1) 原三國時代
원삼국시대 목관묘는 옹관묘와 함께 구릉의 서쪽과 남쪽사면 아래부분에 넓게 위치한다. 현재 후대의 삭평이 심한 관계로 유구의 상부는 대부분 훼손된 상태이며, 확인된 유구는 목관묘 109기, 토광묘 6기, 옹관묘 45기로 총 160기의 원삼국시대 분묘가 확인된다.

(1) 목관묘
신대리 유적에서 원삼국시대 목관묘는 109기가 확인되었다. 현재까지(2008. 1. 29.) 57기가 조사완료되었다. 조사완료된 유구 중 15호, 20호, 81호, 92호, 111호의 경우,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목관묘들이 위치하는 묘역으로 근대의 분묘 또한 중복되는 경우가 전혀 없어 동시기의 목관묘로 판단된다.
목관묘의 장축방향은 총 109기의 목관묘중 51호만이 남-북 방향이고 나머지 것은 모두 동-서 방향으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조사가 진행 중인 관계로 정확한 양상은 살필 수 없으나, 청동유물이 부장된 목관묘는 다른 목관묘와 달리 반경 10m이상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고, 규모면에서도 다른 목관묘 보다 대형이다.
유구의 축조는 묘광을 파고 묘광바닥에 목관을 안치한 다음, 목관과 묘광사이의 빈 공간에는 묘광 굴착시 나온 흙으로 충전하고, 봉토를 조성하였으며, 일부는 묘광상면에 목개를 얹고 봉토를 조성한 것도 확인된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대부분 말각장방형이며, 소수의 세장방형의 평면형태를 가진 유구도 확인된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158~300㎝, 너비 45~120㎝, 깊이 7~135㎝이며, 목관의 규모는 132~245㎝, 너비 23~82㎝이다.
목관은 대부분 묘광바닥의 중앙에 안치하였으나, 유물의 부장공간을 배려한 목관배치의 구조가 보이는 유구도 있다. 14호, 21호, 47호가 이에 해당되며, 모두 유물을 부장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목관을 장벽쪽 으로 치우치게 안치하였다.
목관의 형태는 판재식과 통나무관으로 구별되는데 판재식이 주류를 이룬다. 목관을 안치하고 목관과 묘광사이의 빈 공간을 충전할 때는 대부분 묘광 굴착시 나온 흙을 이용하였으며, 흙과 함께 주변의 풍화암반을 깨뜨려 함께 보강한 것도 있다. 15호, 19호, 21호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주로 10~30㎝가량의 암반을 흙고 함께 충전하고 있으나, 95호 목관묘의 경우, 묘광 바닥에서부터 크기 2~10㎝가량의 풍화암반편을 흙과 함께 바닥을 정지한후, 장벽쪽으로 20~60㎝크기의 풍화암반을 치석한 돌을 사용하여 목관을 고정시킨 후, 흙을 사용하여 빈 공간을 보강한 흔적이 확인된다. 목관의 벽은 대부분 수직벽이다.
묘광의 바닥에서 요갱이 확인된 유구는 67호, 69호, 80호, 83호, 84호, 85호, 89호 7기이다. 요갱은 모두 바닥의 중앙 부근에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40~85㎝×35~82㎝의 평면형태 타원형이다. 요갱의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는 없다.
유물의 부장위치는 현재까지 5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충전토 상면과 충전토 내부, 목관내부와 하부 묘광바닥, 봉토 등에 부장된다. 이 중 가장 많은 유물이 부장되는 위치는 충전토 상면과 목관 내부이다. 토기류는 주로 충전토와 봉토에 부장이 되고 있으며, 철기류와 청동기류는 목관 내부와 하부 묘광바닥으로 부장되는 예가 많다. 현재까지의 토기 부장양상은 크기가 큰 토기는 피장자의 위치에서 발치쪽으로, 작은 토기들은 머리쪽으로 부장되는 예(충전토 출토의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철기류의 유물들은 목관의 바닥에서 확인되는 예가 가장 많으며, 충전토 내부와 상면, 봉토내 등에서도 확인된다. 청동제 유물은 대부분이 목관내부와 묘광바닥에 부장되고 있으나, 38호의 경우, 유구의 상부(봉토)에서 방제경과 동포가 확인이 된다.

(2)토광묘
원삼국시대 토광묘는 현재까지 6기가 조사되었다. 토광묘는 묘광을 파고 별다른 시설없이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으로 내부에서 충전토가 확인이 되지 않아 토광묘로 판단하였다. 토광묘로 분류한 무덤들은 후대의 삭평으로 인해, 잔존깊이가 7~20㎝ 정도로, 목관의 흔적을 살 필 수 없어 토광묘로 구분 하였지만, 출토유물과 다른 목관묘들과 같은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어, 목관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토광묘는 출토유물로 보아 목관묘와 동일시기이며, 입지에서도 차이가 나지 않고 혼재되어 조성되었다. 장축방향 역시 목관묘와 동일한 동-서방향이다. 평면형태는 말각장방형으로 확인되며, 목관묘에 비해 묘광의 크기가 현저히 작다.

(3) 옹관묘
옹관묘는 모두 45기가 조사되었는데 목관묘군과 함께 유적에 고르게 분포한다. 45기 중에 2개의 옹을 이용한 합구식이 36기, 3옹식이 4기이며 파괴되어 구조를 알 수 없는 것이 5기이다.
옹관묘의 장축방향은 목관묘의 방향과 거의 일치하고, 규모는 길이 65~186cm, 폭 34~105cm, 깊이 10~42cm 정도이다.
옹관묘의 조성과정은 평면형태 타원형 또는 말각장방형으로 묘광을 굴착한 다음 대체로 사질점토를 이용해 정지를 하였는데 15호, 40호와 같이 풍화암반을 이용해 옹관을 고정시킨 예도 있다. 주옹과 막음옹을 이용해 매장주체부를 완성한 다음 옹관과 묘광 사이는 다시 사질점토를 채워 넣었다.
옹관 내부에서는 인골흔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8호, 30호, 44호의 경우 동쪽 막음옹 내에서 경식이 출토되고 있다.
옹관은 합구식의 경우 장란형옹과 단경호, 단경호와 단경호의 조합이 많고, 3옹식의 경우 장란형옹과 대호 2점, 단경호와 대호 2점의 조합이 많이 확인되고 있다.

2) 統一新羅時代
통일신라시대의 유구는 횡혈식석실묘 1기와 석곽묘 5기가 확인되어 조사 완료되었다. 유구의 배치는 횡혈식석실묘와 석곽묘가 동-서방향으로 거의 등간격으로 위치하고 있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1) 석실묘
유적전체에서 석실묘는 1기만이 확인되었다.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는 횡혈식석실묘로 벽석과 폐쇄석이 일부 노출된 채 확인되었으며, 동쪽으로 약 23m 떨어져서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4호가 위치하고 있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횡장방형이며, 주축방향은 E-1°-W이다. 석실은 기반층인 암반층을 정지한 후 조성하였다. 연도부는 우벽을 따라 남쪽에 설치되었다. 폐쇄석은 16~17㎝ 정도의 할석을 이용해서 폐쇄하였는데, 1단만 남아 있었으며, 서동쪽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묘도의 폐쇄양상과 2차에 걸친 시상의 설치양상으로 볼 때, 최소 1회 이상의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1, 2차 시상과 조금 떨어져 나란하게 인골이 확인되는데, 추가장을 할 때 시상을 만들면서 놓여있던 인골을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1차 시상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며 2차 시상 동서쪽에 치우쳐 단각고배 1점과 개 3점,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2) 석곽묘
통일신라시대의 석곽묘는 총 5기(3, 4, 10, 11, 16호)가 확인되어 조사 완료되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주축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다. 규모는 길이가 202~241㎝, 폭 70~100㎝, 높이 17~29㎝이며, 장폭비는 1:1.9~1:2.9이다. 석곽의 축조는 기반층인 암반층을 굴착하여 축조하였으며, 네 벽은 암반석을 이용해서 횡평적(4호)을 이용한 것과 와수적+횡평적(10호), 와수적(11, 16호)을 이용하였다.

3) 高麗時代
(1) 석곽묘
고려시대의 석곽묘는 총 4기(1, 8, 14, 17호)가 조사 되었다.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이며, 주축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규모는 길이가 197~238㎝, 폭 10~75㎝, 높이 28~44㎝이며, 장폭비는 1:3~1:3.3이다. 축조방법은 기반층인 암반층을 굴착하여 축조하였으며, 네 벽은 암반석을 이용해서 와수적을 한 것만 확인되었다. 유물 부장위치는 토기류가 대부분 북단벽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철기류는 네 벽석에서 골고루 확인되며, 유물은 청자대접 3점, 병 3점, 동곳 2점, 관정 36점 등이 출토되었다.

(2) 토광묘
토광묘는 총 334기가 확인되어 조사 완료되었으며, 이 중 242기는 1, 2차 지도위원회에 소개되어, 이후 조사된 82기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총 82기의 토광묘 중에서 고려시대 토광묘는 약 10여기 정도이다. 평면형태는 세장방형(7기)과 장방형(3기)이며, 주축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직교한다. 규모는 길이가 113~216㎝, 폭 32~77㎝, 깊이 9~26㎝이며, 장폭비는 1:2.5~1:4.4이다. 토광묘는 기반층인 암반층(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축조하였다. 유물은 청자접시, 청자대접, 소병, 청동숟가락, 동곳, 철제가위, 관정 등이 출토되었다.

4) 朝鮮時代
(1) 토광묘
총 82기의 토광묘 중에서 조선시대 토광묘는 약 50여기 정도이다. 평면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이며, 나머지는 삭평과 유실로 인해 알 수 없다. 장축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대부분 직교하며, 평행한 것도 2기 있다. 규모는 길이가 89.5cm~250㎝, 폭 25~89㎝, 깊이 9~33㎝이며, 장폭비는 1:1.6~1:6.1이다. 토광묘는 기반층인 암반층(황갈색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축조하였다. 유물은 백자대접, 청동숟가락, 청동집게, 상평통보, 동곳, 관정 등이 출토되었다.

(2) 기타
분묘유구를 제외한 조선시대의 유구는 수혈, 우물, 구상유구, 암거시설등이 조사되었다. 유적의 전반에서 분묘유구와의 비율을 비교하면 극소수의 기타유구들이 확인 되었다.

다. 遺物
1) 原三國時代
신대리 유적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 분묘 중, 옹관묘와 토광묘는 조사가 완료되었으며, 목관묘는 총 109기 중, 현재까지 56기가 조사완료 되었다. 3종류의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213점, 토제품 9점, 석기류 2점, 철기류 109점, 청동제유물 23점, 유리․보석류가 474점, 기타 13점으로 총 843점이 확인되었다. 목관묘와 토광묘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56기의 유구 중(조사완료 묘에 한함) 와질토기가 출토된 유구는 53기이며, 무문토기가 공반출토된 유구는 3기이다. 토기류와 금속류의 비율로 본다면, 6:4의 비율로 토기의 부장률이 다소 높다 하겠다.
토기는 전기와질토기의 대표적 기종인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주머니호, 옹, 단경호,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 기종 중 시간적 흐름을 잘 살필 수 있는 유물인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와 주머니호를 통하여 조사된 유구의 대략적인 시기를 살펴볼 수 있다. 확인되는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 중, 14호, 113호의 것은 동체의 형태는 구형으로 최대경이 중하부에 치우쳐 있으며, 구경부의 외반도가 아주 미세하게 거의 변화없는 상태로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기형은 다호리24호와 팔달동 96호 출토품과 유사한 형태이다. 71호, 80호, 82호, 84호, 110호의 것은 동체의 형태는 장동형으로 최대경이 중상부에 치우치고, 구경부의 외반도가 심화되고 있다. 이들은 조양동 36호와 다호리 70호출토의 것들과 유사한 형태이다. 주머니호의 경우, 18호, 26, 33호의 것은 다호리 52호, 67호, 팔달동 32호, 38호, 82호 출토품들과 유사한 점에서, 현재까지 조사된 신대리유적의 원삼국시대 목관묘의 중심연대는 1C전반에서 2C전반까지로 판단된다.

2) 統一新羅時代
유물은 총 21점이 출토되었다. 석실묘에서 5점이 2차 시상 동서쪽에 치우쳐 출토되었으며, 석곽묘에서는 동단벽과 동남장벽쪽에서 출토되었다. 개체수가 가장 많은 인화문개는 꼭지가 굽형과 굽축소형이며, 개신부의 형태는 반원형으로 만곡한 형태와 만곡하다가 개신 중하위에서 바닥면과 거의 수평으로 반전하는 형태, 개신 상부에서 ‘ㄴ’자형으로 반전하는 형태를 보이며, 문양은 삼각집선문+점원문/점반원문, 종장연속점열문, 종장연속마제형문이다. 이상 기형과 문양으로 볼 때 대략적인 시기는 7~8세기대로 판단된다.

3) 高麗時代
석곽묘와 토광묘에서 출토된 청자잡시, 대접, 편병, 주름무늬소병, 철제가위, 고려동경 등의 유물 중,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토광묘 205호에서 출토된 草花文八葵形鏡이 있다. 고려동경으로 12C 이후로 편년이 된다.

4) 朝鮮時代
토광묘 등의 유구에서 백자대접, 접시, 철곳(은곳), 청동숟가락, 관정 등의 유물이 총 420여점이 출토되었다. 연미형의 술대의 측면에서 본 곡선이 거의 없는 청동숟가락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전기의 유물로 보여진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1. 본 유적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 분묘군은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와 사면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는 대규모 분묘군으로 이 시기 분묘집단의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2. 현재까지 조사된 대구 · 경산지역의 원삼국시대 목관묘와 옹관묘유적은 임당유적과 대구 팔달동, 가천동, 서변동, 칠곡 경북대병원부지유적 등이 있다. 신대리 유적은 임당유적에서 목관묘가 가장 많이 확인된 AI, C, E지구와 가장 근거리에 위치하여, 유적간의 비교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3. 본 유적의 남쪽경계에서도 목관묘의 조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어, 임당유적의 공간범위에 대한 재설정도 검토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4. 신대리유적의 목관묘 80호와 94호에서 출토된 마형대구와 호형대구, 부채자루는 당시 분묘 피장자의 지위를 알려주는 위세품으로서 신대리집단의 위계를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임과 동시에 청동유물의 출토를 통해 주변지역과의 교류관계에 대한 연구도 심도있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5. 신대리유적에서는 원삼국시대의 분묘 외에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분묘와 유물이 확인되어, 본 유적이 원삼국시대로부터 계속하여 분묘공간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유적위치도
유구배치도
유적원경
유적전경
목관묘 전경
목관묘 69호
목관묘 80호(좌) · 94호(우)
옹관묘 전경(1)
옹관묘 전경(2)
석실묘 전경
통일신라시대 석곽묘
고려시대 석곽묘
목관묘 출토 토기류
옹관묘(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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