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資料 41
경부고속철도 경주 건설구간내
慶州 芳內里古墳群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유적 위치: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산 20-2번지 일원
2. 조사 기간 : 2005년 11월 15일~2007년 10월 8일(예정)
3. 조사 면적 : 8,560㎡
4. 조사 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이백규)
5. 조사의뢰기관 : 한국철도시설공단
Ⅱ. 調査經過
조사대상지는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산 20-2번지 일원으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시행하는 고속철도 부지 내에 위치한다. 영남문화재연구원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실시한 경주구간의 지표조사 결과 조사대상지역에서 다수의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어 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시되었고, 문화재청의 시굴조사 실시 조치에 따라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는 2002년 5월 6일부터 8월 18일까지 경부고속철도 경주구간 내 문화재 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방내리구간에서 청동기시대 취락유적과 삼국시대 고분, 통일신라~고려시대 기와가마와 조선시대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방내리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는 당초 삼국시대 고분(봉토분)지역부터 실시코자 하였으나 발굴허가 심의과정에서 고속철도 공사의 시급성에 따라 청동기시대 취락유적 일부(Ⅰ구간)와 조선시대 구상유구(Ⅱ구간), 통일신라시대 기와가마(Ⅲ구간)유적 3개소를 방내리생활유적으로 통합하여 2004년 5월 11일에서 2005년 5월 10일까지 발굴조사를 완료하였으며 2007년에 학술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이번 조사는 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삼국시대 고분군이 확인된 방내리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이다. 조사는 조사여건상 북쪽구릉 및 사면부(Ⅰ구역)와 남쪽 구릉 및 사면부(Ⅱ구역)로 나누어 조사를 진행하였다. 2006년 9월 28일에 고속철도 건설의 시급성을 고려하여 Ⅱ구역의 조사내용에 대한 지도위원회를 개최하여 조사가 완료된 지역(Ⅱ구역)의 고속철도공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동계기간(2005. 12. 30~2006. 2. 28)동안 조사를 중지하고, 2006년 3월 1일 재착수하여 현재까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Ⅲ. 遺蹟의 立地및 考古學的環境
방내리고분군이 위치하는 건천읍 일대는 경주분지를 중심으로 서부지역에 해당하며, 경주-영천간 구조곡이 관통하는 지역이다. 조사대상지역은 행정구역상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산 20-2번지 일원에 해당되며, 유적의 위치는 경주시 건천읍소재지에서 舊4번국도를 따라 경주방향으로 약 3㎞정도 가다보면 모량리가 나오고 모량리의 북서쪽에 위치하는 방내리마을의 북서쪽 뒷산에 해당된다.
조사구역 주변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살펴보면, 고분군의 서쪽으로 단석산(해발827m)과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북쪽에 위치하며, 북동편으로는 장군봉(해발456m)의 가지능선이 둘러싸고 있다. 또한 북동쪽에는 모량들(황새들)이 펼쳐져 있으며, 이 들판을 가로질러 경부고속도로와 중앙선 철도가 동-서방향으로 관통하고 있다.
조사구역 주변의 고고학적 환경을 살펴보면, 조사대상구간을 중심으로 알려진 주변유적 중 구석기나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은 아직 보고된 바 없으며,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송선리유적, 방내리지석묘군, 조전리지석묘군, 조사구역에서 남쪽으로 방내리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조사구역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져 방내리가마유적, 북동쪽으로 약 3.5㎞ 지점에 금척리고분군(사적 제43호), 남동쪽으로 각각 2.5㎞와 3.5㎞ 정도 떨어져 모량리고분군과 화천리고분군 등이 위치한다. 이 밖에 방내리유물산포지와 장천사지(방내리사지), 모량리사지 등 다수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Ⅳ. 調査內容
가. 遺構
조사구역은 구릉과 구릉을 경계로 구역을 설정하였다. Ⅰ구역은 북편에 구릉능선부와 남사면부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3동, 삼국시대 석실분 17기, 석곽묘 33기, 고려시대 석곽묘 1기 등 5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Ⅱ구역은 조사구역 남쪽의 구릉남사면부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3동, 삼국시대 석실분 6기, 석곽묘 1기, 시대불명 수혈 1기 등이 확인되어 총 65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1) 靑銅器時代
(1) 住居址
청동기시대 주거지 6동이 확인되었으며 4동이 조사되었다.
1호 주거지는 Ⅱ구역의 북서편 구릉 정선부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주축방향 N-S이다. 규모는 길이 400㎝, 폭 367㎝, 잔존깊이 45㎝이다. 내부에는 별다른 시설은 확인되지 않으며, 북동편 모서리부분에 적석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저부 1점, 구연부편 1점, 미완성석기 1점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주거지는 Ⅱ구역의 남쪽 구릉 사면말단부에 위치하며 후대에 절토되면서 주거지의 서장벽을 제외한 대부분이 결실되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주축방향 N-17°-E이다. 규모는 길이 570㎝, 폭 92~162㎝, 잔존깊이 32㎝이다. 주거지의 축조는 풍화암반층을 약간 비스듬하게 굴착하였는데 서장벽의 일부는 2단 굴착하였다. 내부시설로는 노지와 주혈이 확인된다. 노지는 중앙에서 북편에 치우쳐서 위치하며, 1/2 정도가 잔존한다. 주혈은 직경 8~15㎝로 배치상 정형하지 않다. 출토유물은 북쪽 상면에서 구연부편 1점, 저부 2점, 홍도편 1점, 석검편 1점, 지석 1점, 미완성석기 1점, 박편 1점 등이 출토되었다.
3호 주거지는 2호 주거지의 바닥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결실되고 남서쪽 모서리일부만 남아 있다. 바닥 높이는 2호 주거지와 비슷하다. 내부시설로는‘ㄷ’자형의 구와 주혈 1기가 확인된다. 구의 규모는 잔존길이 290㎝, 폭 20~30㎝, 깊이 15㎝ 내외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4호 주거지는 Ⅰ구역 북쪽의 구릉 능선부에 위치한다. 주거지는 삼국시대 4호·30호·31호 석곽과 7호 석실분 축조과정에서 상부가 일부 파괴되었으며, 북단벽은 자연 유실되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길이 710㎝, 폭 440㎝, 잔존깊이 45㎝이다. 바닥은 부분적으로 불다짐 되었다. 폐기는 바닥과 내부퇴적토에서 다량의 목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화재에 의한 폐기로 판단된다. 유물은 바닥면에서 발, 구연부편(공열), 지석, 주상편인석부, 편인석부, 박편 등이 출토되었다. 남단벽쪽에서는 대형의 모암 주위로 다수의 박편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석기제작공간의 가능성이 높다.
2) 三國時代
(1) 석실분
석실분는 총 23기가 확인되었다. 석실분은 Ⅰ구역과 Ⅱ구역 모두 분포하는데 사면부에 축조된 것은 후대 유실로 훼손이 심한 반면에 구릉부의 석실은 그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1호 석실분의 경우, 도굴이 되었지만 분구와 석실이 잘 남아있다. 대부분의 석실분이 현실내부에 벽석과 개석이 붕괴된 채로 확인되었으며 호석이 무너져 있었다. 석실의 축조는 자연경사면을 일부 정지한 후, 매장주체부가 마련될 현실과 연도부를 벽석 1단정도의 높이로 굴착하고, 벽석과 호석을 쌓아 올리면서 그 사이를 성토하는 방법으로 분구를 축조하였다. 현실은 평면형태에 따라 종장방형(1호, 5호, 22호), 횡장방형(2호~4호, 6호~15호, 17호, 19호), 방형(16호)으로 구분된다. 시상은 장축방향으로 할석 또는 천석을 일정한 두께로 깔아서 마련하였는데 추가장을 하면서 시상의 규모와 방향, 시상석의 크기를 달리하였다. 매장횟수는 최대 3차장(2호, 12호, 15호, 18호)까지 이루어졌다. 연도의 방향은 22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좌측에 위치하며 사면아래쪽을 향한다. 연도와 연결되는 묘도부는 대부분 호석쪽으로 나팔상으로 벌어진다. 주축방향은 석실분이 축조된 위치와 관련되는데 대부분 동-서방향을 기본축으로 하며 약간씩 틀어진다. 두향은 주축방향, 두침석의 위치, 유물부장 양상, 2호 석실의 이식 출토 위치 등을 통해 볼 때, 동향으로 판단된다.
① 1호 석실분
Ⅰ구역의 중앙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조영된 횡혈식석실분으로 분구가 덮여 있었으며 중앙에 도굴된 흔적이 확인되었다. 분구의 규모는 직경 810~900cm, 잔존높이 190㎝이다. 호석은 20~30㎝의 천석과 할석을 사용하였으며 현재 1단 정도만 남아있다. 분구 남쪽에는 평면‘T’자형의 배례석이 호석에서 30㎝정도 떨어져 설치되어 있다. 연도부는 현실의 좌편에 위치하며, 규모는 길이 145㎝, 폭 75㎝이다. 폐쇄석은 큰 할석을 사용하였는데 최하단 폐쇄석면을 기준으로 상하가 차이를 보이는데, 상부의 폐쇄석은 추가장과 관련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묘도부는 봉토를 어느 정도 제거한 면에서 확인되었다. 묘도부의 평면형태는 나팔형으로 벌어지며, 규모는 길이 250㎝, 폭 160~380㎝이다. 현실은 분구 중앙에서 약간 동편으로 치우쳐 축조되었다. 현실의 평면형태는 종장방형이며, 주축방향 N-1°-E이다. 현실의 규모는 바닥면을 기준으로 길이 180㎝, 폭 120㎝이다. 석실의 축조는 자연경사면을 정지하고 정지층 위에서 묘광을 파고 벽석과 호석을 쌓으면서 성토한 것으로 판단된다. 벽석은 40㎝ 이상의 비교적 큰 돌을 사용하여 하단석을 놓고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여 평적한 후 개석을 덮었다. 동장벽은 거의 수직인 반면에 서장벽은 하단석부터 들여쌓기하여 사각을 이룬다. 개석은 1m 내외의 편평한 할석으로 현실에 3매과 연도부에 2매를 얹었는데 현실의 개석 1매는 도굴과정에서 현실내부로 붕괴되었다. 천정부의 축조는 현실 단축방향으로 연도개석을 먼저 덮고 연도개석 위에 2~3단의 돌을 더 쌓고 현실개석을 덮었다. 그리고 개석과 개석사이의 빈공간은 10~30㎝의 할석으로 막아 마무리하였다. 시상은 5~10㎝의 할석과 천석을 이용하여 현실 전면과 연도의 폐쇄석 앞까지 깔고 25㎝ 내외의 문지방석을 2열로 놓아 마무리하였다. 시상의 규모는 길이 180㎝, 폭 120㎝이다. 유물은 시신의 발치쪽에 대부호 1점을 부장하였다.
② 4호 석실분
Ⅰ구역의 서북편에 조영된 횡혈식석실분으로 벽석의 일부가 현실내부로 붕괴된 채 확인되었으며, 연도개석과 호석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었다. 분구의 규모는 길이 650~750㎝이다. 호석은 40~60㎝의 천석과 할석을 사용하여 수적하였으며 최대 4단 높이까지 남아 있다. 호석의 평면형태는 6각형을 띠는데 현재까지 방내리고분군 내에서 이러한 6각형의 호석은 4호 석실이 유일하다. 연도부는 현실의 좌측에 위치하며, 연도개석 3매가 남아 있다. 연도부 안쪽은 30~40㎝ 정도의 비교적 할석을 이용하여 폐쇄하였고, 연도부 입구 쪽에는 5~20㎝의 할석으로 완전히 폐쇄하였다. 연도부의 규모는 길이 194㎝, 폭 74㎝, 높이 102㎝이다. 연도부의 우측 벽석과 현실의 후벽이 교차하는 지점에 장대석이 확인된다. 현실의 평면형태는 횡장방형이며, 주축방향은 N-20°-W이다. 현실의 규모는 바닥면을 기준으로 길이 208㎝, 폭 142㎝, 잔존높이 128㎝이다. 현실벽석은 4~5단 정도가 잔존하며, 축조는 30~90㎝의 할석을 사용하여 종평적하였다. 묘도부의 폐쇄양상과 2차에 걸친 시상대의 설치로 봤을 때 한 번의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차시상은 북·남장벽의 최하단석에서 20~30㎝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장축방향으로 시상석을 깔았는데 5~20㎝의 할·천석을 깔았다. 2차 시상은 10~20㎝의 할석을 이용하였는데 형태는 1차시상과 거의 동일하며 관대석을 놓았다. 유물은 1차시상에서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2차시상면에서 불명철기 1점이 출토되었다.
③ 8호 석실분
Ⅰ구역의 서편 경계부분에 조영된 횡혈식석실분으로 호석과 벽석이 흐트러진 채 확인되었다. 분구는 거의 유실되었으며 직경 270~310㎝이다. 호석은 평면 원형을 띠며 1단정도만 남아있다. 호석열은 석실의 연도부에 접해 있으며 묘도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실은 평면형태 횡장방형이며, 주축방향 N-79°-W이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125㎝, 폭 83㎝, 잔존높이 68㎝이다. 벽석의 축조는 20~30㎝의 할·천석으로 최하단석을 수적한 후, 2단부터는 평적하였다. 연도부는 현실의 좌편에 위치하며, 10~30㎝의 할·천석으로 폐쇄하였다. 연도부의 규모는 길이 62㎝, 폭 50㎝이다. 시상은 현실의 장축방향으로 북장벽에 붙여서 마련하였다. 시상의 축조방법은 먼저 10~20㎝ 정도의 천석을 이용하여 길이 125㎝, 폭 62㎝, 높이 10㎝의 시상대를 만든 후, 그 위에 2열의 받침돌을 나란히 놓고 평기와 3매를 1열로 놓아 마무리하였다. 추가장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유물은 현실 동단벽바닥면에서 유개대부호 4점, 파수부옹 1점 등을 부장하였다.
④ 16호 석실분
Ⅰ구역의 남동편 조사 경계부분에 조영된 횡혈식석실분으로 사면 아래쪽은 농로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분구는 거의 유실이 되었다. 분구의 규모는 직경 12.4m이며 주구를 포함한 규모는 직경 16.4m이다. 호석은 내호석 2열과 외호석 2열로 구성되는데 후대 교란으로 인해 전체형태는 알 수 없으나 원형을 띤다. 내호석은 분구 북쪽과 남쪽일부에서만 확인된다. 내호석 안쪽열은 현실벽석에서 190~200㎝정도 이격시켜 황갈색풍화암반층에 30~40㎝의 천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는데. 현재 1~2단정도만 남아 있다. 내호석 바깥쪽열은 안쪽열에서 80㎝정도 이격시켜 들여쌓기로 축조하였다. 북쪽의 내호석 바깥쪽열은 비교적 큰 천석을 사용한 반면에 남쪽은 10~25㎝의 할·천석으로 축조하였다. 외호석열은 주구바닥에 퇴적토가 일부 쌓인 후에 축조되었는데 외호석을 쌓으면서 봉토와 주구를 재정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외호석은 주구 안쪽면을 따라 전체적으로 돌린 호석열과 서쪽
일부만 덧대어 보수한 호석열로 구분된다. 외호석의 안쪽열은 주구의 깊이보다 약간 높게 설치하였는데 5~15㎝의 할·천석을 이용하여 들여쌓기로 축조했으며 최대 8단까지 남아 있다. 덧댄 호석열은 안쪽열 보다 큰 돌을 사용하였다. 연도부는 현실의 좌편에 위치하며 1~2단 정도만 남아 있다. 규모는 길이 190㎝, 폭 75㎝이다. 연도부의 폐쇄는 30~40㎝의 큰 할·천석을 사용하였는데 최하단 폐쇄석이 가지런한 것으로 보아 추가장의 흔적으로 판단된다. 묘도부는 삭평되어 남아 있지 않다. 현실의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주축방향 N-6°-E이다. 석실의 규모는 바닥면을 기준으로 길이 190㎝, 폭 175㎝이다. 석실의 축조는 자연경사면을 정지한 후, 묘광을 파고 벽석과 호석을 쌓으면서 주구토를 사용하여 성토한 것으로 판단된다. 벽석은 2~3단만 잔존하는데 40㎝ 이상의 비교적 큰 할·천석으로 평적하였다. 묘도부의 폐쇄양상과 2차에 걸친 시상대의 설치로 봤을 때 한 번이상의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차시상은 서장벽에 접해서 남북방향으로 설치하였는데 외변을 20~40㎝의 천석을 3단정도 평적한 후, 3~7㎝의 천석을 2~3겹 깔아서 마련하였다. 1차시상의 규모는 길이 184㎝, 폭 90㎝, 높이 35㎝이다. 2차시상은 1차시상과 직교되는데 북단벽에 붙여서 마련하였다. 1차시상의 규모는 길이 184㎝, 폭 110㎝, 높이 38㎝이다. 2차시상의 축조는 먼저 현실의 북동쪽면을 1차시상 높이까지 맞추기 위해 1차시상석축과 직교되게 2차시상석축을 만들고 안쪽에 돌과 흙으로 채운 다음, 5~10㎝의 천석을 1겹정도 깔아 1차시상보다 약간 높게 시상을 마련하고 1·2차시상 석축에 20~30㎝의 천석을 덧대어 보강하였다. 유물은 1차시상면에서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2차시상면의 동편에서 유개대부완 2점, 유개발 1점, 유개호 1점, 배 2점, 병 2점 등을 부장하였다.
⑤ 19호 석실분
Ⅱ구역의 남쪽 구릉남사면에 조영된 횡혈식석실분이다. 분구의 직경은 호석이 놓여져 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680cm이다. 호석은 20~40㎝의 할·천석을 사용하여 들여쌓기로 축조하였는데 사면 위쪽은 3~4단정도 남아 있지만, 사면 아래쪽은 유실되었다. 현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주축방향 N-38°-E이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216㎝, 폭 150㎝, 잔존높이 70㎝이다. 연도부는 현실의 좌편에 위치하며, 4단 정도의 폐쇄석이 잔존한다. 연도부의 규모는 길이 148㎝, 폭 90㎝이다. 묘도부는 나팔상으로 벌어지며, 규모는 길이 172㎝, 폭 114~172㎝이다. 시상대는 현실의 장축방향으로 서장벽에 붙여서 설치하였다. 시상대는 편평한 할석과 직경 10㎝ 내외의 천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시상대의 추가설치와 및 유물의 추가부장을 통해 볼 때 추가장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차시상은 길이 190㎝, 폭 80㎝이며, 2차시상은 1차시상 위에 20㎝의 평평한 할석을 덮어 설치하였다. 2차시상의 규모는 길이 200㎝, 폭 100㎝이다. 유물은 1, 2차 모두 현실의 북단벽쪽에 부장하였다. 1차시상에서는 대부장경호 2점과 도자 1점, 2차시상면에는 대부완 1점, 대부장경호 2점, 개 2점, 도자 1점 등을 부장하였다.
2) 석곽묘
석곽묘는 총 34기가 확인되었다. 석곽묘는 Ⅱ구역에서 확인된 1호 석곽을 제외하고는 모두 Ⅰ구역에서 확인되며 남사면부에 축조된 몇 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편의 구릉 능선부에 분포한다. 석곽묘의 구조는 수혈식이 21기, 횡구식이 13기이다. 2호~6호·8호·14호·15호, 19호·20호 석곽 등은 분구가 남아 있다. 동일분구 내에 2기의 석곽을 배치한 경우는 2-1호·2-2호, 4-1호·4-2호, 5호·6호, 7-1호·7-2호, 10호·11호 등이 있는데, 이 중 2-1·2-2호 석곽은 모두 수혈식이며, 5·6호 석곽은 횡구식이다. 그 외는 수혈식과 횡구식이 세트를 이룬다. 석곽의 축조는 원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묘광을 굴착하고 할·천석을 이용하여 벽석을 평적하였는데 횡구식석곽묘는 횡혈식석실분과 동일하게 반지하식으로 축조하였다. 시상은 대부분 돌을 깔아 마련하였는데, 2-2호·3호·17호·18호·22호·24호는 굴착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주축방향은 대부분 남-북방향을 기본축으로 하며 약간씩 틀어지며, 24호, 31호, 25호는 동-서방향에 가깝다. 두향은 주죽방향, 폐쇠석의 위치, 두침석의 위치, 유물부장 양상 등을 통해 볼 때, 북향으로 판단된다.
① 5호·6호 석곽묘
Ⅰ구역의 북서편 조사경계부분에 조영된 횡구식석곽묘이다. 동쪽으로 7호·7-1호 석곽, 남쪽으로 14호 석곽이 인접해 있으며, 북쪽은 깊은 자연곡부가 형성되어 있다. 5·6호 석곽은 연접분으로 6호 석곽이 선축되고 5호 석곽이 6호 석곽의 동쪽분구와 호석을 절취하고 들어섰다. 현재 남아 있는 분구는 후축된 6호 석곽과 관련되며 호석을 갖추고 있다. 선축된 5호 석곽의 호석은 대부분 파괴되고 5호 석곽의 호석 안쪽으로 일부만 남아 있다.
5호 석곽은 평면 장방형이며, 주축방향은 N-38°-W로 남쪽에 횡구부가 위치한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184cm, 폭 80cm, 잔존높이 76cm이다. 석곽의 축조는 최하단벽석 높이만큼 묘광을 굴착하고 30~50cm의 천석을 이용하여 종평적하면서 벽석과 호석 사이를 성토하여 분구를 조성하였다. 시상은 5~10cm의 천석을 이용하여 마련하였다. 횡구부는 비교적 큰 할석을 사용하여 폐쇄하고 묘도부를 흙채움하였다. 유물은 석곽내에 이형토기 1점, 철겸 1점을 부장하였으며, 배례석 주변에서 병 1점, 봉토 내에 대부완 1점이 출토되었다.
6호 석곽은 평면 장방형이며, 주축방향은 N-16°-W로 남쪽에 횡구부가 위치한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178cm, 폭 80cm, 잔존높이 62cm이다. 석곽의 축조는 5호 석곽과 거의 동일하다. 시상은 5~10cm의 천석을 이용하여 마련하였다. 유물은 횡구부쪽에 병 2점을 부장하였으며 호석 내에서 유개대부병 1점이 출토되었다.
② 8호 석곽묘
Ⅰ구역의 북서편에 조영된 횡구식석곽묘이다. 동북쪽으로 9호 석곽, 남쪽으로 17호 석곽이 인접해 있다. 유구확인 시, 석곽개석 3매와 벽석이 흐트러진 채로 확인되었다. 분구의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직경은 528~556cm 내외이고, 호석은 갖추고 있지 않다. 석곽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주축방향은 N-18°-W로 남쪽에 횡구부가 위치한다. 묘광의 규모는 270cm, 폭 130cm, 깊이 41cm이며, 석곽의 규모는 길이 186cm, 폭 70cm, 잔존높이 80cm이다. 석곽의 축조는 원지형을 15㎝ 정도의 두께로 정지한 후 묘광을 굴착하고 5~10cm의 천석을 이용하여 시상을 마련하고, 벽석은 20~40cm의 할·천석을 이용하여 평적하면서 분구를 성토하였다. 횡구부는 비교적 큰 할석을 사용하여 폐쇄하고 묘도부를 흙채움하였다. 유물은 시신의 머리와 좌·우측편에서 장경호 1점, 유개고배 2점, 대부완 1점, 배 1점 등을 부장하였다.
③ 21호 석곽묘
Ⅰ구역의 중앙에 조영된 수혈식석곽묘이다. 남편에 1호 석실분, 북동편에 19호 석곽묘가 인접해 있다. 조사전 상태는 호석과 분구는 확인되지 않으며 석곽의 개석 2매와 벽석 일부가 노출된 상태였는데 남쪽의 개석은 석곽내부로 내려 앉아 있었다. 석곽의 평면형태 말각방형이며, 주축방향 N-44°-W이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194㎝, 폭 145㎝, 깊이 33㎝이며, 석곽의 규모는 길이 95㎝, 폭 42㎝, 깊이 46㎝이다. 석곽의 축조는 기반층을 완만하게 굴착한 후 30~40㎝의 할·천석을 이용하여 최하단석을 수적하고, 그 위에 10~20㎝의 돌을 평적하여 개석 2매를 얹었다. 시상은 10~15㎝의 천석을 1~2겹 깔아 마련하였고 북단벽쪽에 두침석을 놓았다. 유물은 두침석 우측편에 배 1점, 유개고배 2점, 유개병 1점, 개 1점을 부장하였으며, 충전토내에 병편이 깨트려진 채로 확인되었다.
④ 16호·18호 석곽묘(옹관)
Ⅰ구역의 구릉 능선부에 조영된 합구식옹관묘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주축방향은 N-12°-W이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150㎝, 폭 95㎝, 잔존깊이 37㎝이다. 축조방법은 기반층을‘U’자상으로 굴착하고 바닥에 잔돌로 시상을 마련하였고 옹관을 안치하였다. 묘광과 옹관사이는 15~30㎝의 천석을 이용하여 2~3단 가지런히 쌓듯이 충전하였다. 옹관에 사용된 토기는 장동옹과 호의 동체편 2점으로 시신의 신장을 감안하여 머리와 발을 먼저 넣고 몸통부분은 호편으로 덮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장유물은 장동옹의 좌측편에 유개완 1점과 유개옹 1점을 별도로 부장하였다.
18호 석곽은 16호 석곽에서 동편으로 20㎝ 떨어져 조영된 합구식옹관묘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주축방향 N-14°-E이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97㎝, 너비 70㎝, 잔존깊이 20㎝이다. 축조방법은 16호 석곽묘와 거의 동일하다. 옹관은 장동옹과 단경호를 이용하였는데 장동옹의 구연을 단경호에 삽입하였다. 별도의 부장유물은 없으며 서쪽 충전석 아래에서 1/4정도 잔존하는 개 1점이 출토되었다.
나. 遺物
방내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크게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유물로 구분된다.
청동기시대유물은 주거지에서 출토된 발, 구연부편, 저부편, 석검편, 지석, 미완성석기 등 총 16점이다. 토기는 대부분 저부와 구연부 형태로만 출토되어 기형을 알 수 없다. 2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석검은 유단식으로 병부와 검신일부만 잔존한다. 현재 조사 중인 4호 주거지에서는 공열토기, 무경식석촉, 석부, 지석, 박편 등이 확인되고 있다.
석곽과 석실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 기종구성과 문양에 있어서 큰 시기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토도류 221점, 금속류 9점, 평기와 3점 등 총 233점이 출토되었다. 토기의 기종은 크게 고배, 병, 호, 발, 대부완, 개로 구분되며, 고배와 발을 제외한 호, 병, 대부완, 개 등에는 문양이 시문되어 있다.
고배는 유개고배와 무개고배로 구분되며, 유개고배는 다시 대각에 돌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특히 돌대가 없는 고배의 대각은 돌대가 있는 대각에 비해 매우 짧은 것이 특징이다. 병류는 단경병과 대부장경병으로 구분되며, 호류는 대부단경호와 연질 소호로 구분된다. 구연부의 형태는 바닥면과 거의 수평으로 반전한다. 발은 유개대부발과 유개발로 구분되며, 뚜껑받이턱을 가지는 발은 후술할‘入’자형의 드림부를 가지고, 만곡하는 개신부의 형태를 띠는 뚜껑과 공반된다. 대부완은 현재 8점이 출토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대부완의 크기와 비교해 대형에 해당된다. 개는 전술한 여러 기종과 공반되며, 출토량과 형태가 다양하다. 개의 형태는 크게 드림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되며, 드림턱이 없는 것은 접시모양의 소형 개로 대부단경호와 공반된다. 드림턱이 있는 개는 드림턱과 개신부형태, 꼭지형태에 따라 분류되는데, 드림턱은‘卜’자형과‘入’자형, ‘ㄱ’자형으로, 개신부의 형태는 반원형으로 만곡하는 형태와 만곡하다가 개신 중부에서 바닥면과 거의 수평으로 반전하는 형태로 구분되며, 꼭지의 형태는 굽형, 굽축소형, 보주형으로 구분된다.
토기에 시문된 문양은 시문수법에 따라 긋기수법과 콤파스수법, 압인수법으로 구분된다. 긋기수법의 문양은 삼각집선문, 콤파스수법의 문양은 점원문·점반원문, 압인수법으로 시문된 문양은 삼각집선문·화문·점원문·점반원문·원문·이중원문·마제형문·수적형문·점열문 등이 해당된다. 압인수법의 문양은 모두 각각의 시문구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방내리유적에서 개를 포함한 토기의 시문수법의 조합상을 살펴보면 크게 긋기수법+콤파스수법(1유형), 긋기수법+압인수법(2유형), 콤파스수법+압인수법(3유형), 압인수법(4유형), 종장 압인수법(5유형)으로 구분되며 이를 정리하면 <표 5>와 같다. 금속류는 토기 출토량에 비해 그 수가 적은데, 2호 석실에서 출토된 이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기유물로 도자 5점, 불명철기 3점 등이 출토되었다. 평기와는 8호 석실분에서 3점이 출토되었는데 중판의 선문타날이 이루어졌다.
이상에서 살펴본 방내리유적의 삼국시대 석실분 및 석곽묘의 시기는 출토된 토기의 기종과 문양에서 대동소이하므로 큰 시기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며 그 대략적인 시기는 7세기대로 판단된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석곽에서는 토기와 자기가 공반되어 출토되는데, 토기는 완 1점, 옹 1점, 자기류는 대접 1점, 병 1점이 출토되었고, 관정 7점이 출토되었다.
Ⅴ. 調査成果및 意義
1. 방내리유적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6동, 삼국시대 석실분 23기, 석곽묘 34기, 고려시대 석곽묘 1기, 시대불명 수혈 1기 등 총 65기가 확인되었다.
2.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구릉의 남사면과 정선부에 입지하는데 삼국시대 고분축조과정에서 상당부분 파괴된 상태이다. 주거지의 내부구조와 출토유물은 빈약하지만 건천읍 일대의 사라리·송선리·화천리유적과 함께 이 일대의 청동기시대 취락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되며, 그 시기는 2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단식석검, 4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공열토기와 무경식석촉을 통해 볼 때, 청동기시대 전기의 늦은 시기로 추정된다.
3. 삼국시대 석실분과 석곽묘는 분구와 호석을 갖추는 등 잔존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천정석이 확인되는 1호·4호·5호 석실분은 석실분구조 복원에 좋은 자료가 된다. 4호·6호·9호·12호·17호 석실분의 경우, 현문부에 장대석이 세워져 있다. 장대석은 경주 서악리 석침총, 장산 토우총 등에서 확인되는 전형적인 형태의 문주석은 아니지만 형식적으로 문주석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릉능선부(Ⅰ구역 북편)에 밀집 분포하는 석곽묘는 수혈식과 횡구식으로 구분되는데 횡구식은 대부분 분구를 갖추고 있으며 규모면에서 수혈식보다 크다. 소형석곽은 대부분 수혈식이며, 2-2호·7-2호·9호·21호·20호·28호 석곽 등의 초소형석곽은 16호·18호·27호 석곽(옹관묘)과 같이 유아를 매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본 유적의 석실분과 석곽묘는 유구 간 중복 없이 일정한 묘역을 갖추고 조영되었다. 그리고 동일 봉토 내에 횡구식석곽묘와 수혈식석곽묘가 함께 축조되고 있는 점에서 무덤 간에 큰 시기차이는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그 축조연대는 토기유물의 기종과 문양의 시문수법 및 구성을 통해 볼 때, 7세기대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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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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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위치 및 주변유적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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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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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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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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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4호 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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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16호 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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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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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석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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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호 석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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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문양시문수법 및 문양 조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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