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資料 40
대구 매호동 매동초등학교 신축부지내
大邱 梅湖洞 1008番地遺蹟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1. 유적위치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1008번지 일원
2. 조사기간 : 1차 - 2006. 3. 13. ~ 2006. 7. 4. / 2차 - 2006. 9. 15. ~ 2007. 2. 23.
3. 조사면적 : 5,827㎡
4.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李白圭)
5. 조사의뢰기관 : 대구광역시 동부교육청
Ⅱ. 調査經過
대구 매호동 1008유적은 대구광역시 동부교육청에서 추진하는 대구 매동초등학교 건립에 따른 형질변경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조사(2006. 1. 16~2006. 2. 11)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의 주거지·수혈,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구상유구·적심건물지·건물지·우물 등 원삼국시대 이후의 생활유적들이 조사구역내에 분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우리 연구원에서는 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6년 3월 13일부터 2006년 7월 4일까지 1차 조사를 실시하였고 2006년 9월 15일부터 현재까지 2차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Ⅲ. 遺蹟의 立地및 考古學的環境
유적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 1008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조사대상지가 위치한 곳은 남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시지방향으로 나 있는 달구벌대로를 따라 이동하면 시지택지지구 일대에 위치하는 신매네거리가 나오는데, 이 네거리에서 북쪽 매호로를 따라 약 500m 정도 거리에 있는 한일아파트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발굴조사 이전까지 논과 과수 경작지로 이용되어 왔다.
조사대상지가 위치한 대구시 시지지역과 고산지역 일대의 지형을 살펴보면 남쪽으로는 성암산, 안산, 대덕산과 같은 다소 높은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이러한 남부 산지의 북쪽에는 여러 갈래의 능선과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이 계곡들에서 흘러내린 유수에 의해 계곡 아래쪽과 평지가 만나는 부분에는 비교적 넓은 선상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선상지는 북서쪽으로는 정상해발 129.9m인 우산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나지막한 산들이 형성되어 있는 지점에서 끝나고 북동쪽으로는 금호강까지 연결된다. 한편 선단부 북동쪽으로는 매호들, 애꼬재들, 성동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이 들의 중앙부에는 정상해발 92.7m인 고산이 위치한다. 조사대상지역은 우산과 고산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충적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매호천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 남천 및 금호강과 합류한다.
조사대상지 주변의 고고학적 환경을 살펴보면 사방 2km 이내에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의 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먼저 동쪽으로 1㎞ 범위 내에는 삼국시대유적인 성동토성 및 고분군, 남쪽으로 1㎞ 정도 떨어져 사월동 지석묘군이 있고 서쪽으로는 1㎞ 범위 내에 시지동 지석묘군, 고산중학교부지 유적을 비롯하여 2㎞ 범위 내에서 시지동 고분군, 가천동고분군이 있다. 또 남서쪽으로 약 500m정도 떨어져서 매호동 지석묘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1.5㎞ 범위 내에 시지택지지구 일대에 삼국시대 시지생활유적 및 노변동고분군 등이 있다.
Ⅳ. 調査內容
1. 層位
유적의 기본 토층은 크게 4개의 층으로 나뉜다. 상위 1층은 근대 과수 경작을 위해 복토한 경작층으로 두께는 30~50㎝ 정도이고 조사지역내에 전면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과수 경작층 바로 아래에는 두께 10~15㎝정도의 논 경작으로 인한 황갈색 사질점토층(10YR 4/3)이 확인되는데 근대 논 경작이후밭으로 이용한 것을 알 수 있다. 2층은 갈색 사질점토층(10YR 4/4)으로 통일신라시대 토기편과 기와편이 다수 확인되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문화층이다.
3층은 소토가 섞인 갈색 사질점토층(10YR 4/4)으로 원삼국시대 토기편을 포함하고 있는 원삼국시대~삼국시대의 문화층이다. 4층은 선상지 선단부의 지속적인 하천의 범람과 퇴적 등의 유수작용에 인하여‘암갈색 사질점토층(10YR 3/3) + 사력층’이 반복적으로 형성된 하상퇴적층이다. 대부분 사력층 위에 고운 사질점토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원삼국~삼국시대 수혈 유구는 대부분 이 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하였다.
2. 遺構
현재 남쪽으로 내부조사가 진행 중이며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석관묘 1기, 원삼국~삼국시대주거지 27기, 주혈군 2개소와 통일신라시대 이후 구상유구 2기, 건물지 2기, 적심건물지 1기, 우물2기, 수혈 8기 등 총 45기이다.
가. 靑銅器時代
1) 석관묘 1호
유적의 남쪽에 조성된 석관묘로, 남쪽으로 약 6m 정도에 떨여져서 주거지 25호가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격벽이 형성된‘日’자형이다. 석관묘는 장축방향이 N-7°-E이며, 묘광 규모는 길이 180㎝,너비 119㎝, 깊이 36㎝ 정도이다. 조사과정에서 석곽의 개석으로 보여지는 점판암제 판석이 확인되었다. 석관묘는 개석, 장단벽, 격벽, 바닥을 모두 점판암제 판석을 이용하여 관의 형태로 조성하였다. 석관 규모는 길이 55cm, 너비 23cm, 깊이 36cm이다. 개석은 부분적으로 깨져 북단벽 인근에 일부잔존한다. 전면에서 확인된 개석을 들어내자 하부에서는 점판암제 판석을 이용하여 관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북쪽에 판석 1매를 세워 격벽시설을 조성하였으며 구조상 부장칸으로 판단된다. 부장칸북벽은 별도의 판석을 이용하지 않고 천석으로 벽을 조성하였다. 바닥도 판석을 깔아 놓았지만 그 길이가 짧아 부장칸에는 1/2 정도만 깔려 있고 나머지는 천석을 깔아 놓았다. 석관의 내부에는 갈색의 사질점토로 채워져 있었다. 묘광선과 석관 사이에는 천석과 사질점토를 이용하여 보강하였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나. 原三國~三國時代
1)주거지 1호
유적의 북쪽에 축조되어 있으며 서쪽으로 약 2m 정도에 구상유구 1호가, 약 5m 정도에 주거지 2호가 위치하고 있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고, 주축방향은 N-10°-W, 해발고도는 43.7m이다. 규모는 길이 722cm, 너비 667㎝, 최대깊이 30.6㎝이다.
주거지 바닥면은 기반층인 하상퇴적층 가운데 사질점토층을 이용하여 굴착하였으나 사질점토층이 두껍지 않아 그 하위의 자갈층도 함께 굴착한 다음 고운 사질점토로 정지하였다. 벽면을 따라 2~10㎝ 두께의 점토가 있는데, 이것은 벽 시설과 관련하여 인위적으로 부착한 벽제토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벽제토의 평면에서 주혈이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외벽에 기둥을 세운 다음 벽제토를 부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주주혈은 4주식이고 중앙에 직경 25㎝의 주혈 1개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벽을 따라 총 28개의 주혈이 약 80~90㎝ 정도의 등 간격으로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쪽 벽 인근에 2개의 주혈이 위치하고 있는데 출입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에서 약간 북쪽으로 치우쳐 부뚜막시설 1기가 위치하고 있는데 평면형태는 제형에 가깝다. 부뚜막은 호나 시루의 저부가 놓일 수 있도록 축조하였으나 지각과 같은 도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통부에서는 덮개석 1개가 확인될 뿐 별다른 시설이 관찰되지 않는다.
유물은 주거지 바닥에서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토되었고 주거지 상부에도 다수의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바닥면에서 단경호와 구연부 편이, 석기류는 편인석부 1점과 연석 1점이 출토되었다.
2) 주거지 5호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방형이고, 주죽방향은 N-12°-W, 해발고도는 43.7m이다. 규모는 길이 480㎝, 너비 502㎝, 최대깊이 42㎝이다. 토층은 주거지 폐기 이후 자연퇴적층과 벽토와 온돌시설(부뚜막, 고래) 등의 내부 시설물이 무너져 내린 층으로 나뉜다. 바깥쪽 양 끝부분에서 고래시설과 벽을 확인할 수 있다. 바닥면은 점토로 다진 후 부분적으로 불다짐 흔적이 관찰된다. 벽은 기둥을 세운 후, 점토를 부착하여 조성하였다. 벽의 색토는 등색이며, 이는 고래시설에 연접하여 환원작용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벽을 조성한 후 부뚜막과 고래시설을 별도로 설치하였다. 벽을 따라 너비5~10㎝ 정도의 목탄이 횡방형으로 위치하고 있다. 남벽-동벽-북벽을 잇는‘ㄷ’자형 고래시설이 확인된다. 고래시설은 벽에 접하여 터널형으로 구축하였으며, 규모는 너비 54㎝, 잔존길이 약 10m 정도이고, 잔존 최대높이는 25~30㎝ 정도이다. 북서쪽 모서리에 출입구시설을 추정되는 말각방형의
돌출부가 형성되어 있다. 규모는 길이 110㎝, 너비 140㎝ 정도이고 바깥쪽으로 너비 34㎝, 최대높이 22㎝ 정도의 강화면이 조성되어 있다. 네모서리에 직경 15~20㎝의 주혈이 위치하고 있다.
주주혈은 4주식으로 바깥쪽으로는 외벽을 따라 벽주혈이 위치하고 있다. 주주혈의 간격은
260~302㎝정도이고 규모는 직경 36~40㎝, 깊이 40~50㎝이다. 벽주혈은 등간격 약 80㎝정도로한 벽에 5개가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는 직경 25~30㎝, 잔존 최대깊이는 30㎝정도이다. 유물은 벽토 함몰과 함께 완형의 발을 비롯하여 다수의 토기류와 방추차가 출토되었으며, 북벽 인근에서 연석 1점이 출토되었다.
3) 주거지 12호
평면형태는 동쪽 경계부로 인해 1/3 정도 걸려 있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말각방형으로 추정된다. 유구의 주축방향은 N-26°-W이며, 규모는 길이 892㎝, (현)너비 640㎝, 깊이 38~44㎝이다.
주거지 3호, 5호와 마찬가지로 고래시설을 불다짐한 흔적은 관찰되지만 바닥면에서는 관찰되지 않고, 고래시설 벽체 속에 초본류가 확인되어 점토와 초본류를 섞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벽은 기둥을 세운 후 등색 점토를 부착하였다. 네 면을 돌아가면서 ’ㅁ‘자 모양의 고래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북동쪽에 치우쳐 뚜렷이 확인된다. 고래시설은 벽에 접하여 터널형으로 구축하였으며, 규모는 너비 22~32㎝, 잔존길이는 164㎝, 잔존높이 18㎝ 정도이다. 내부시설은 벽주혈, 수혈이 확인된다. 벽주혈은 최소 20㎝, 최대 78㎝ 정도로 고래시설을 따라 양쪽으로 돌아간다. 규모는 직경 11~32㎝,깊이 8~26㎝ 정도이다. 수혈은 타원형이 4개, 원형이 4개, 부정형이 2개로 총10개가 확인되는데, 저장용으로 추정되며, 대부분 내부에서 소토와 목탄알갱이가 확인된다. 또한 중앙에서 북쪽으로 一字形의 수혈이 110㎝의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데, 공간분할을 하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유물은 장란형토기 1점과 단경호 2점 놓여져 있으며, 남동쪽에 치우쳐 발, 대호편, 석구, 철촉이 확인되었다.
5) 주거지 17호
유적의 동쪽에 축조되어 있으며 인근에 북쪽으로 주거지 16호, 동쪽으로 주거지 15호, 남쪽으로 주거지 18호가 위치하고 있다. 북동쪽 모서리 일부는 교란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방형이고, 주죽방향은 N-4°-W, 해발고도는 44.3m이다. 규모는 길이 572㎝, 너비 564㎝, 최대깊이 40㎝이다.
토층은 주거지 폐기 이후 자연퇴적층과 벽토와 고래시설 등의 내부 시설물이 무너져 내린 층으로 나뉜다. 내부 시설은 주거지 5호와 마찬가지로 벽, 주혈, 고래시설, 저장용 수혈 등이 있으며, 부뚜막시설은 주거지 5호에 비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벽은 기둥을 세운 후, 점토를 부착하였다. 벽을 조성한 후 부뚜막과 고래시설을 별도로 설치하였다. 부뚜막시설은 소성부, 측벽, 배연부, 지각 등이 있다. 또한 부뚜막시설의 양쪽으로 남벽-동벽으로 이어지는‘ㄱ’자형 고래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부뚜막시설의 소성부는 길이 70㎝, 너비 36㎝, 높이 26㎝이다. 지각은 점토를 쌓아 조성하였으며, 현재 무너져 내려 일부만 남아 있다. 잔존 지각의 규모는 길이 15㎝, 너비 13㎝이다. 측벽 양쪽 중위를 관통시켜 고래시설과 이어지고 있다. 고래시설은 너비 20~36㎝, 높이 14~27㎝, 최대 길이 770㎝이다. 주주혈은 4주식으로 바같쪽으로는 외벽을 따라 벽주혈이 위치하고 있다. 주주혈의 간격은 180~250㎝ 정도이고 규모는 직경 25~36㎝, 깊이 20~36㎝이다. 벽주혈은 등간격 약 60㎝ 정도로 한 벽에 6개가 위치하고 있고 있으며, 현재 총 개수는 21개가 남아 있다.
유물은 고배대각, 완, 기대편, 석구, 방추차 등을 비롯하여 상부에서 다수의 토기편이 출토하였다.
다. 統一新羅時代이후
1) 구상유구 1호
유적의 북동쪽에 있으며 남-북 방향으로 약 52m 정도 길게 뻗어 있다. 원삼국시대 문화층에 조성되었던 주거지 4호, 5호, 7호, 11호, 수혈 2호 등의 유구를 파괴하고 조성되었다. 평면 형태는 거의 ‘一’字형이고 주축방향은 N-5°-W, 해발고도는 42.8~44.0m이다. 규모는 길이 5,210㎝, 너비340㎝, 최대깊이 30㎝이다. 단면 형태는‘U’字형이고 바닥면에는 부분적으로 잔자갈이 두께 3~7㎝ 정도로 깔려 있다. 유물은 원삼국시대·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 섞여서 출토되었다.
2) 적심건물지 1호
유적의 북동쪽에 치우쳐서 위치하며 남쪽으로 주거지 3호와 수혈 1호가, 북쪽으로 주거지 1호가 위치하고 있다. 건물지의 평면형태는 방형이고 주축방향은 N-24°-E, 해발고도는 43.9m이다. 건물지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방형이고 주칸 거리는 정면 42㎝, 측면 38㎝이다.
적심의 평면형태는 원형이 대부분이다. 개별 적심의 규모는 지름 65~96㎝, 깊이 10~20㎝ 정도이며 상부가 결실되어 적심은 1~2단 정도만 남아 있다. 적심은 원삼국시대 문화층인 소토가 포함된 적갈색 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천석과 할석을 채워 넣었다. 유물은 남동쪽 적심 내부에서 중판 선문평기와 1점이 출토되었다.
3) 수혈 5호
유적의 남서쪽 경계부에 치우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북쪽으로 건물지 1, 2호와 남쪽으로 수혈 6호가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유구의 주축방향은 N-20°-W, 평면 형태는 말각방형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길이 350㎝, 현 너비 325㎝, 깊이 31㎝, 해발은 43.4m 정도이다.
토층은 크게 2개의 층으로 나누어지는데, 미량 목탄이 포함된 갈색사질점토와 점성이 강한 갈색사질점토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면은 갈색사질점토로 정지하였고, 일부 자갈이 확인된다. 중앙에는 암키와 1점이 놓여 져 있으며, 북동쪽에는 대접 4점이 겹쳐져 있었다.
3. 出土遺物
1)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수혈 주거지에서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대부분 토기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기종은 고배, 기대, 연질발, 단경호, 장란형토기, 시루 등이 있고 재질은 와질과 도질이 함께 출토되고 있다. 고배류는 두형토기, 工字形고배 등이 확인되며, 호류는 승석문타날단경호를 비롯하여 紐附壺, 단경호 등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와질의 장란형토기와 시루가 다수 확인되는데 시루 저부의 투공 형태는 대부분 一자형이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류는 고배와 시루 등의 형태로 보아 중심연대는 4세기대로 판단된다. 또한 토제 방추차가 다수의 주거지에서 출토되었는데 옆면을 경사지게 깎기조정하여 측면 중위가 뾰족하게 선을 이루고 있다. 석기류로는 주거지 1호, 5호, 16호에서 편인석부, 합인석부, 연석 등이 출토되었고 이외에도 다수의 주거지에서 석구가 출토되고 있다.
한편 본 유적에서는 승석문, 평행타날문, 격자문, 특수타날문, 무문 등 다양한 종류의 타날문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평행타날문과 격자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철기류는 철촉 2점이 출토되었다.
2) 통일신라시대 이후
구상유구, 건물지, 수혈에서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기와와 토기, 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구상유구의 하층에서는 중판 격자문 평기와, 삼국시대의 토기편들이 출토되었고 상층에서는 인화문토기 편이 출토었다. 구상유구 인근에 위치하는 적심건물지에서도 기와편이 출토되었는데 이 기와 또한 구상유구와 마찬가지로 중판 선문 타날판 기와인 것으로 보아 구상유구와 유사한 시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건물지 1호에서는 호와 완이 한 조를 이루고 있는 진단구가 출토되었다. 한편 수혈 5호에서는 조선시대 백자 대접 4점이 도치된 상태로 출토되었는데 완형으로 상태가 양호하다.
Ⅴ. 調査成果및 意義
1. 조사대상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청동기시대의 석관묘 1기, 원삼국~삼국시대의 주거지 27기, 주혈군 2개소,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구상유구 2기, 수혈 8기, 건물지 2기, 적심건물지 1기, 우물 2기 등 총 45기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대부분 원삼국~삼국시대 수혈 주거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일부 주거지에서 벽, 온돌시설(부뚜막, 고래시설), 주혈 등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의 주거지 복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유물은 원삼국~삼국시대 주거지에서 연질발, 단경호, 장란형토기, 시루, 紐附壺등의 다수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그 밖에도 방추차, 토구 등의 토제류와 편인석부, 합인석부, 연석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유적의 중심연대는 유구와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인근의 대구 매호동 979-4번지 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 2003)과 유사한 3세기 중반에서 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유구에서는 주로 인화문토기, 자기편, 기와편 등이 확인되며 건물지 1호에서는 진단구인 호와 자기 완 출토되었다. 또한 수혈 5호에서는 완형의 백자 대접이 4점이 도치된 채 출토되었다.
2. 대구 시지택지지구에서 삼국시대의 생활유적이 대규모로 조사된 이후 동일지역에서 다수의 원삼국~삼국시대 취락군이 발굴 조사된 경우는 이 유적이 처음이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서 시지일대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종다양한 유구들이 지속적으로 조영되고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향후 이 지역의 문화상을 연구하는 데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3. 이 유적 인근에 원삼국시대의 성동토성과 성동 고산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쪽으로 4㎞ 떨어져서 임당토성-임당고분군-임당 취락군이 위치하고 있어서 토성-취락-고분을 연관시켜 검토함으로써 과거 지역 집단을 연구하는 데 다양한 연구 방향을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
4. 최근 영남지방의 경산, 성주, 울산, 김해, 진주, 창원, 함양 등의 지역에서 원삼국~삼국시대의 주거지가 다수 조사되고 있어서 영남지방 원삼국시대 주거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특히 이 시대 서부 경남을 중심으로 하는 낙동강 이서지역에는 타원형 주거지가, 낙동강 이동지역에서는 방형 혹은 말각방형 주거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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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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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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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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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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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묘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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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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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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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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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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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유구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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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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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삼국-삼국시대 주거지 출토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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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지 출토 타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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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및 건물지 출토 자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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