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慶州 芳內里 瓦窯址 發掘調査 경주 방내리 와요지 발굴조사

시대 고려-조선
성격 생산
회수 5
개최일자 2013.06.18
조회수 3,180

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資料 52


경주 방내리 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공사구간 내 유적(1차)
慶州 芳內里 瓦窯址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 유적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394-1번지 일원
▣ 조사기간 : 2012. 10. 26.~2013. 12. 20.(실조사 100일)
▣ 조사면적 : 8,560㎡(A구역-784㎡, B구역-619㎡, C구역-4,051㎡, D구역-3,106㎡)
▣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박승규)
▣ 조사의뢰기관 : 한국철도시설공단

Ⅱ. 調査經過
본 조사는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추진하는 경부고속철도와 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공사 구간과 관련한 문화재 발굴조사이다. 동해남부선 연결선 구간 중 경주 방내리 일대는 기존 경부고속철도건설에 앞서 다수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발굴(시굴)조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우리 연구원에서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요청에 따라 전체 노선중 경주 방내리 일원의 발(시)굴조사(1차)를 추진하였으며, 총 2회(1회; 2011년 8월 2일~9월 30일, 2회; 2012년 4월 24일~5월 15일)에 걸쳐 조사하였다. 조사대상지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삼국시대 봉토분·석곽묘, 고려~조선시대 와요, 수혈 등의 유구가 확인되어 사업대상지 일부에 대한 정밀한 문화재 발굴조사(2012년 10월 26일~2013년 12월 20일 실조사일수 100일)가 필요하게 되었다. 조사는 A, B, C, D 총 4개소의 구역으로 구분하여 실시하였는데, 이 중 A구역(784㎡)에 대하여는 부분완료 시행이 되었다.(발굴제도과-4442/2013.5.8.)
금번의 자료는 C·D구역에서 조사된 19기의 고려 전기~조선 전기대의 와요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다.

Ⅲ. 遺蹟의 立地및 考古學的環境

가. 自然·地理的環境
조사대상지역은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394-1번지 일원이다. 경주시 건천읍 소재지에서 舊4번 국도를 따라 경주방향으로 약 3㎞ 정도 떨어진 곳에 모량리가 위치하는데, 이 모량리의 북서쪽 단석산 말단부가 방내리 마을에 해당된다.
조사대상지가 위치하고 있는 건천읍 일대는 경주시 관내의 중서부 지역이며, 경북 내륙에서 이어지는 교통망이 건천읍을 지나 경주로 이어지고 있어 신라 고도인 경주의 서쪽 관문이라 할 수 있다. 건천읍의 형상은 마치 누에고치처럼 길쭉한데, 동쪽은 현곡면(見谷面)·선도동(仙桃洞), 서쪽은 서면(西面)·산내면(山內面), 남쪽은 내남면(內南面), 북쪽은 서면·현곡면에 접한다. 지형적 특성을 살펴보면 영천~경주를 잇는 구조곡이 읍의 중앙을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관통하고, 구조곡을 따라 지대가 낮은 동쪽에 대천(한내)이 산을 감고 흘러 경주 외곽을 돌아 형산강에 합류하게 된다. 남쪽에는 벽도산(碧桃山)·단석산·주사산(朱沙山)을 잇는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으며, 북쪽에는 구미산(龜尾山)이 솟아 있다. 골짜기의 비탈면에 선상지가 띠 모양으로 발달해있고, 골짜기 평탄지에 취락과 농경지가 직선상으로 배열되어 있다.
방내리는 단석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로 고도가 다소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방내마을, 큰마을, 고양태마을 등이 있다.

나. 歷史·考古學的環境
방내리는 경주 건천읍 단석산 기슭에 위치하는데 산에 둘러싸인 폼이 마치 방안에 있는 것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방내(房內)’라고 불렀다 하며, 단석산에서 화랑들이 수련하였다고 하여‘방내(芳內)’라 하였다고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 큰 마을은 주민이 가장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모시밭각단은 옛날부터 이 마을에서 모시를 많이 재배하였으므로‘모시밭각단’이라고 하였으며, ‘저마전(苧麻田)’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고양터 마을은 신라시대 불교가 융성할 즈음 절이 많던 곳으로 백성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바치던 곳이라고 하여‘공양(供良)터’라고 하다가 후에 고양태 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 말암은 말을 교통수단으로 사용하던 때에, 이곳에서 말을 많이 먹였다 하여‘마전현(馬轉峴)’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말을 매어 두던 바위의 이름을 따서‘말암’,‘ 말바우’혹은‘두암(斗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단석산(斷石山)은 방내리와 송선리, 산내면 감산리와 내일리, 내남면 비지리에 걸쳐 있는 해발 827m의 산으로 월생산(月生山)이라고도 하였다. 소년시절 김유신 장군이 이 산에서 수련할 때 장검으로 바위를 잘랐다는 유래에 따라 단석산이라 하였다.
조사대상구간을 중심으로 알려진 주변유적으로 구석기나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은 아직 보고된 바 없다. 하지만, 이 일대는 경부고속철도 공사와 울산-포항간 복선전철 공사 등을 계기로 주변에 다수의 유적이 보고된 바 있으며, 그 외에도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여러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송선리유적, 송선리 지석묘군 Ⅰ·Ⅱ, 조전리 지석묘 Ⅰ·Ⅱ와 지석묘군, 대곡리 지석묘군 Ⅱ, 방내리 지석묘군 Ⅰ·Ⅱ, 방내리 생활유적, 화천리 지석묘군, 화천리유적 등이 산재한다. 지석묘는 대부분이 건천읍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천의 주위로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생활유적들은 비교적 완만한 구릉부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한편, 조사대상지와 인접해있는 경주 모량리 530번지 유적에서는 비교적 평지의 지형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3동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초기철기시대 유적은 현재까지 경주 화천리 산251-1번지 유적에서만 주거지 10동을 비롯한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
원삼국시대 유적은 앞서 언급한 경주 화천리 산251-1번지 유적, 덕천리 유적 등에서 주거지와 목관·목곽묘 등의 생활, 분묘유적 등이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널리 알려진 금척리 고분군 등이 있다. 이 고분군은 국도 4호선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22기, 서쪽에 30기가 나누어져 있으며, 모두 적석목곽분으로 추정하고 있는 고분군이다. 이와 함께 이번 조사대상지의 일부 범위(A·B구역)가 속하는 방내리 고분군은 단석산의 동쪽 말단부에 해당하며 방내리의 박실마을에서 방내마을에 걸쳐 있으며, 말암산까지 포함한다. 방내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5차례에 걸쳐 부분적으로 실시되었다. 최초 발굴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시 도로가 방내리 고분군의 북편 일부를 관통함에 따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부분 발굴조사를 하였으며, 2차는 1994년 경부고속도로 건천휴게소를 신축하면서 실시한 휴게소 건립부지(방내리 36-1번지 일원)내에 대한 조사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하였다. 3차는 1996년에 모량-신평간 농어촌도로 확·포장공사를 시행하면서 훼손된 유구에 대한 수습조사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하였다. 4차 조사는 경부고속철도 경주 구간에 대한 발굴조사이다. 5차는 2009년 신라문화유산조사단에서 실시한 조사로,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 174-2번지 단독주택 건립부지내 발굴조사이다. 1차 조사에서는 적석봉토분 19기, 횡혈식석실분 30기, 석곽묘 18기 등이 조사되었으며, 2차 조사에서는 지석묘 6기와 석실분 등 고분 55기가 조사되었다. 3차 조사에서는 석실분 등 11기가 조사되었다. 4차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8동, 석곽묘 35기, 석실분 23기 등이 조사되었고, 5차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동, 석실묘 6기, 석곽묘 1기가 조사되었다.
이 외 금번 검토 대상(C·D구역)인 와요 유적은 기존 조사된 방내리 생활유적에서 9기가 확인되어 조사하였다. 2004년 12월 3일 실시한 지도위원회에서는 이 유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가마의 3D실측 및 현지 성토보존이라는 회의 결과(영문연 86705-1150/2004.12.28)를 제시하였고, 이에 따라 와요지는 성토한 후 사업을 시행하도록 한 문화재청의 발굴 완료조치(발굴조사과-203/2005.09.01.)가 내려졌다. 이에 사업시행처인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는 이를 시행(기술0905-1212/2005.11.28.)하고 사업을 실시하였다.
이상의 유적들을 제외하고도 조사대상지 주변에는 많은 유적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는 방내리 지역 일대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폭 넓은 시기의 다양한 유구가 조성되었음을 방증한다.

Ⅳ. 調査方法및 層位

◆ 調査方法
현장조사 착수 시 먼저 조사대상지역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동시에 조사대상지역의 조사전 상태를 촬영하고 기록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유적의 중앙과 북쪽 경계면을 기준 토층으로 삼고, 필요에 따라 제거해가면서 조사하였다. 조사는 구획한 둑을 이용하여 토층상태를 파악하며 제토함을 원칙으로 하였다. 기존에 이루어진 시굴조사 내용을 참고하여 조사를 시작하였으며 그 순서는‘시굴조사 결과 정리→ 조사범위 측량→ 표토 제거→ 유구 확인 및 정리→ 유구 내부조사→ 실측 및 자료 정리 순으로 진행하였다.
우선 시굴조사 결과로 확정된 발굴조사 범위를 참고하여 그 경계 측량을 실시하였고, 이를 토대로 지형을 파악하고 작업의 효율성을 고려하며 조사대상지의 상부퇴적토를 제거하였다. 제토는 경사면 상부에서 시작하여 아래쪽으로 진행하였으며 시굴조사 과정에서 유구가 확인된 Trench의 퇴적양상을 살피며 실시하였다.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전 상태를 촬영하고, 유구의 방향과 직교되게 둑을 설치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사내용, 주변현황 및 확인된 유구에 대해서는 조사기록지 및 조사일지를 기록하고 조사완료된 유구에 대해서는 평·단면도 실측을 하였다. 또한 조사대상지의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등고 측량을 실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유구배치도를 작성하였다. 사진촬영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하여 조사단계별로 하였고, 조사진행에 맞추어 적절한 시점에 유적·유구에 대한 공중촬영을 실시하였다.
금번 검토 대상인 C·D구역은 경부고속철도를 중심으로 남쪽(D구역)과 북쪽(C구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의 산지에 비해 비교적 야트막한 마산(215.5m) 동쪽과 북동쪽 능선이 평지와 만나는 말단부에 와요군이 조성(114~120m)되어 있다. 유적은 발굴조사 직전까지 밭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북쪽에 인접한 장천지의 水位때문에 1.5~2m 정도 복토해 경작을 하고 있었다.
유적은 표토층-황갈색 사질점토층-암갈색 사질점토층-회황갈색 사질점토층-생토층 순으로 퇴적되어 있다. 표토층과 황갈색 사질점토층은 경작층으로 사면말단부에서만 확인된다. 또한 암갈색 사질점토층은 시간적으로 후대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는 상부 와요의 부산물인 재가 사면 말단부에서 부분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은 생토층으로 유구가 조성되어 있는 층이다.

Ⅴ. 調査內容

이번 조사는 경부고속철도와 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 공사에 앞선 문화재 발굴조사로서 사업의 시급성과 조사의 편의를 위해 A~D구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이 중 C·D구역에서 고려 전기~조선 전기대에 이르는 와요군이 확인됨에 따라 동일 능선상에 위치한 경주 방내리 생활유적 와요 9기와 더불어 방내리 지역이 해당시기 대규모 와요지였음을 발견하는 契機가 되어 그 내용을 정리해 본다.
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관계로 정확한 조업연대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일부의 와요가 기존 조사된 방내리 생활유적 와요의 조사 당시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출토유물의 등문양이 같아 조업시점을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와요의 구조와는 달리 장방형의 대형 와요도 다수 확인되었는데 조선 전기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가. 瓦窯
현재 경부고속철도를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C구역에서는 조선 전기대로 추정되는 와요 10기와 이와 관련된 수혈 9기, 구 2기가 확인되어 조사 중이다. 또한 D구역에서도 고려 전기와 조선 전기대로 추정되는 와요 9기, 그리고 구 1기가 확인되어 조사하였다.
유적 내에서 확인된 와요는 조업시점이 고려 전기와 조선 전기대로 구분되기 때문에 이를 시대별로 구분하고 난 후, 가마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1) 입지 및 축조순서
주변 산지에 비해 야트막한 마산(해발 215.5m)의 북동과 동사면 말단부에 고려~조선 전기 와요가 확인되어 조사중이다. 최초 가마는 비교적 완경사의 낮은 산지에 조성되어 있었고, 당시에도 확인된 유구의 아래쪽에 저수지(장천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일조시간이 긴 동사면부에 유구를 조성하는 등 유적 내의 와요군은 이론상 입지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유구는 해발 114~125m 정도에 집중해 조성되어 있다. 주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되어 있다. C구역의 1·2호, 3~5호, 7·8호, 9·10호, 그리고 D구역의 2·3호, 6·7호는 2기씩 서로 나란하게 위치한다.
와요의 구조 및 출토유물을 통해 축조순서를 살펴보면 평지의 와요에서는 주로 직선계의 집선문이 타날된 평기와가 많이 확인되고 있고, 구릉 사면의 와요에서는 곡선계의 호상 집선문이 타날된 평기와가 많이 출토됨에 따라 평지에서 선축한 이후 구릉 사면으로 이동하여 와요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C구역; 先조성 와요1·2호, 9·10호→ 後조성 와요3~8호).

2) 시대별 와요 구조의 특징

▶ 고려시대
마산(215.5m) 북동쪽 능선 말단부에 위치한다. 경주 방내리 생활유적 발굴조사 당시 조사된 기와가마 9기 이외에도 금번 조사대상인 D구역에서 확인된 소수 몇기도 해당된다. 해발 120m 선상에 조성되어 있다.
이를 가마의 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축조위치가 모두 반지하식인 등요로 소성실과 연소실 사이에 수직에 가까운 50㎝ 정도 단벽을 설치하였고, 소성실에는 계단시설이 형성되지 않은 유계무단식의 구조이다.
제형의 평면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는 삼국~통일신라시대 기와가마의 소성실 후벽 형태가 호상을 이루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말각형태여서 대조적이다. 규모는 전체 길이 (600)㎝ 내외, 최대너비 210㎝ 정도이다. 소성실의 길이는 (330)㎝, 잔존 깊이는 20㎝, 단벽의 높이는 41~47㎝이고, 연소실의 길이는 140~180㎝, 최대너비는 220㎝이다.
훼손정도가 심하나 연소실을 통하여 가마 내부의 퇴적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데, 크게 3차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와조업 후 남아있는 재층으로 연소실 내부 바닥에서 확인되고 있다. 두번째는 가마의 인위적 혹은 자연적인 폐기시 토층에 확인된 천장부편과 벽체편의 퇴적 양상이며, 세번째는 구릉 정상부로부터 갈색사질점토가 유입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① 연도부
훼손이 심하여 연도는 확인되지 않으나 축적된 자료를 통해볼 때 소성실 후벽으로 갈수록 급격히 좁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② 소성실
소성실은 기와를 적재하여 소성하는 가마의 중심부분이다.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구의 평면형태는 제형으로 추정된다.
훼손이 심하여 바닥면만 남아 있는 상태로, 내부 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요상경사도는 14~26° 정도이다. 평면형태는 동시기 자료를 통해볼 때 제형으로 소성실 후벽이 말각형태로 좁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성실의 면적은 6.8㎡ 정도이다.

③ 연소실
연소실은 땔감을 쌓아 불을 지피는 곳으로 연료의 연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연소실의 평면형태는 반원형을 띠며 무단식 구조로 길이에 비해 너비가 넓은 것이 특징이다. 아궁이와 연소실의 연결단면상태는 외고내저형이다. 소성실과 연소실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50㎝ 정도의 경사가 급한 단벽이 확인되었다. 단벽은 생토면 그대로를 이용하거나 기와를 사용한 방식이 확인되었다.

④ 아궁이
연료의 공급 및 기물의 출납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가마의 입구에 해당한다. 돌과 기와등을 이용하여 구축한 흔적이 D구역 2호에서 확인된다. 아궁이 부분의 너비는 40㎝ 가량이다.

⑤ 요전부
요전부는 번조와 소성제품의 반출입 및 적재 등의 작업을 위해 확보된 공간이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가마의 장축방향과 동일하게 축조되었다.
요전부에서 회구부로 이어지는 부분에 가마 장축방향과 동일하게 수키와를 일렬로 연결하여 놓은 양상이 D구역 2호에서 확인되는데 이는 배수나 송풍의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⑥ 배수구
D구역 3호에서만 확인된다. 유구는 경사진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어 외부로부터 우수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가마 주체부를 둘러싼‘∩’자상의 배수구를 축조하였다. 규모는 너비가 120~280㎝, 깊이가 20㎝ 정도이고, 단면형태는 완만한‘U’자형을 띠고 있다. D구역 2호에 의해 배수구 동쪽부가 파괴된 점으로 볼 때 선후관계가 확인된다. 내부에는 폐기된 기와편을 비롯해 구릉상부로부터 유입된 풍화암반+갈색사질점토가 퇴적되어 있었다.

▶ 조선시대
동일 능선 북쪽과 동쪽 말단부(해발 115~120m)에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유구는 주축방향이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고 있다.
이를 가마의 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축조위치가 대부분 지하식인 등요로, 소성실과 연소실 사이에 수직에 가까운 60~110㎝ 정도 단벽을 설치하였고 소성실에 계단시설이 형성되지 않은 유계무단식의 등요이다.
평면형태는 모두 장방형인데, 이는 인접한 고려시대 기와가마와 달리 소성실 후벽 형태가 직선상을 이루고 있고 돌출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규모는 전체 길이 520~1050㎝, 최대너비 190~290㎝이다. 소성실의 길이는 320~(750)㎝, 잔존 깊이는 29~150㎝, 단벽의 높이는 67~110㎝이고, 연소실의 길이는 140~320㎝, 최대너비는 150~280㎝이다.
가마 내부의 퇴적양상은 크게 3차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와조업 후 남아있는 재층으로 주로 연소실 내부 바닥에서 확인되고 있다. 두 번째는 가마의 인위적 혹은 자연적인 폐기시 토층에 확인된 천장부편과 벽체편의 퇴적 양상이며, 세 번째는 구릉 정상부로부터 갈색사질점토가 유입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① 연도부
소성실 끝부분에 4~6매의 수키와를 가마의 장축방향과 평행하게 놓아 배연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구조는 소성실 끝단에서 약한 둔각을 이루며‘ㄴ’자형으로 오르고 있다.

② 소성실
소성실은 기와를 적재하여 소성하는 가마의 중심부분이다.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구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제1·2 소성실로 구분된다. 먼저 연소실과 가까이 있는 제 1소성실은 길이가 1m 정도 되고, 경사도는 10°내외로 비교적 편평하다. 이에 비해 제 2소성실의 경사도는 25°정도로 가파르다. 소성실의 면적은 20㎡ 정도이다. 내부시설로는 와편을 등간격으로 배열한 와열이 확인된다. 이 와열의 용도는 조업시 기와를 수적하여 적재하기 때문에 수평을 맞추기 위한 것이며, 가마 바닥과 기물이 뜨거운 온도에 의해 붙지 않게 하기 위한 離床材의 역할도 한 것으로 보인다.

③ 연소실
연소실은 땔감을 쌓아 불을 지피는 곳으로 연료의 연소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연소실의 평면형태는 반원형을 띠며 무단식 구조로 그 깊이는 2m 정도로 매우 깊다. 아궁이와 연소실의 연결 단면상태는 외고내저형의 한 형태인 수직연소식 구조를 띤다. 소성실과 연소실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60~110㎝ 정도의 비교적 높고 경사가 급한 단벽이 확인되었다. 단벽은 생토면을 굴착하여 사용하다가 그 위에 점토를 덧발라 보수하여 사용한 방식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가마의 구조는 당시 기와의 필요요구량 증가에 따른 사회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3) 출토유물 및 연대
유물이 대부분 편으로 확인되어 제작방법과 수량, 그리고 소성·폐기시 가마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C구역 와요 6호에서 기와를 조업하기 위해 적재한 상태가 일부나마 양호하게 확인되어 조업 당시 가마 내부의 기와 적재방법 및 온전한 유물을 통해 시간성을 반영하는 기와 유물의 속성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이번 C구역과 D구역의 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은 극소수의 막새류를 제외하고는 평기와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중 막새류는 12세기대로 편년되는 일휘문 암막새와 조선전기대의 범자문(a-u-m)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또한 D구역 주변 수습 유물 중 牛舌形암막새에는‘施主金風􄦠, 施主鄭􄦠􄦠’銘文이 확인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수급처가 당시 사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다음으로 평기와는 길이가 대부분 40㎝ 정도이고 그 중 수키와는 모두 유단식의 미구기와만 확인된다. 유물의 등문양 중 직선계의 삼각집선문과 곡선계의 호상집선문이 유적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러한 등문양은 조선 전기대의 것으로 편년된다.
기 조사된 경주 방내리 생활유적 기와가마에서 출토된 유물은 고려시대 대표적인 등문양인 어골문이 다수이고, 세선문, 복합문 등도 확인된다. 또한 당시 조사단에서는 연대보정을 위해 방사성탄소연대 및 고고지자기연대 측정을 실시하여 조업시점을 A.D. 820~A.D. 1060년 정도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볼 때 경주 방내리 동해남부선 연결선 건설공사구간내 유적(1차) C· D구역의 기와가마는 고려 전기부터 마산의 구릉 말단부에 조성되어 조선 전기까지 조업을 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 竪穴遺構
C구역 동쪽 평지에서 9기가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대다수 부정형이며, 규모는 길이 180~700㎝, 너비 100~290㎝, 깊이 10~42㎝ 정도이다. 생토층인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되었으며, 내부는 정지되지 않은 상태로 굴곡이 심하다. 내부토는 크게 3개의 층으로 퇴적되어 있다. 상부에 퇴적된 1개 층은 재층이 혼입된 갈색 점토층으로, 와편과 가마 벽체편이 포함되어 있다. 그 아래로는 와편이 포함된 황등색 점토층이 퇴적되었고, 이 층의 아래는 회색의 니질점토가 황갈색 사질점토와 함께 섞여진 층으로 퇴적되어 있다. 내부 퇴적토 중 회색 니질점토는 양질의 점토를 얻기 위한 수비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현상과 굴곡진 바닥형태를 통해, 이 수혈의 용도는 가마의 축조에 필요한 흙을 채취하는 토취장 또는 기와의 제작과 관련된 수비장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다. 溝
C구역에서 2기, D구역에서 1기가 확인된다. C구역에서 조사된 구 2기는 방내리 생활유적 Ⅱ구간에서 조사된 구상유구 1·2호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며 출토된 유물은 없다. 생토층인 명황갈색 사질점토층을 굴착하여 조성하였으며, 내부에는 5㎝ 정도의 잔자갈이 인위적으로 놓은 듯 깔려 있다.

Ⅴ. 調査結果및 意義

1. 현재까지 진행된 C·D구역 조사에서 고려·조선시대 와요 19기, 수혈유구 8기, 구 3기 등 총 30기의 유구가 확인되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 발굴조사 결과 이 일대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대규모 가마터로 밝혀졌다. 기 조사된 방내리 생활유적(영남문화재연구원 2007)의 와요 9기를 포함한다면 단일지점에서 30여기에 달하는 와요를 조사하게 되는 셈이다. 유구가 조성되어 있는 마산(해발 215.5m) 북동쪽과 동쪽 사면 말단부가 현재 경지정리에 의해 많이 삭평된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와요가 조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단일 유적 내에서 기와를 조업한 가마군 중 공주 운암리 유적(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8) 다음으로 많은 수가 조사된 것으로 경주 방내리 와요지는 영남지방 최대의 기와 조업 가마군이 된다.

3. 고려 전기 이전부터 조선 전기까지 오랜기간 동일 능선에서 조업이 이루어져 해당시기 가마구조의 변천 및 조업시스템 변화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4. 중복 축조된 기와가마를 통하여 축조순서를 파악할 수 있어 이 시기 기와 편년연구에 있어 양호한 자료로 판단된다.

유적 전경
조사대상지역 위치도 및 주변유적 분포도
C·D구역 범위도
층위
시대별 유구 및 유물현황
경주지역 주요 와요 분포현황
C구역 유구배치현황
D구역 유구배치현황
고려시대 가마 세부구조(연도)
고려시대 가마 세부구조(소성실)
고려시대 가마 세부구조(단벽)
고려시대 가마 세부구조(단벽)
고려시대 가마 세부구조(아궁이)
고려시대 가마 세부구조(와열)
고려시대 가마 세부구조(배수구)
경주지역 주요 고려시대 와요 현황
조선시대 가마 세부구조(연도)
조선시대 와요 구조(울산천전리 와요1호 인용)
와요 속성 및 제원표(요 주체부)
와요 속성 및 제원표(요 주체부)
기와적재방법
수혈유구 제원 및 출토유물 현황표
구 제원 및 출토유물 현황표
출토유물
출토유물 및 조사 전경
방내리 와요지 범위(추정)
C구역 와요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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