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설명회

達城 舌化里古墳群 發掘調査 달성 설화리고분군 발굴조사

시대 청동기,삼국,고려∼조선
성격 봉토,석곽,석실,옹관,석관,토광,수혈
회수 3
개최일자 2012.08.19
조회수 3,253

嶺南文化財硏究院 現場說明會資料 50

대구 달성군 설화리 556-5번지 건물신축부지 내 舌化里古墳群 發掘調査

Ⅰ. 調査槪要

▣ 조 사 명 : 대구 달성군 설화리 556-5번지 건물신축부지 내 설화리고분군 발굴조사
▣ 유적위치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556-5번지
▣ 조사기간 : 2012년 3월 19일 ∼ 2012년 8월 28일(예정)
▣ 조사면적 : 2,955㎡
▣ 조사기관 : (재)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 박승규)
▣ 조사의뢰인 : 권영하

Ⅱ. 遺蹟의 立地와 考古學的 環境

유적이 위치하는 화원지역은 현재 대구-고령간 국도와 88고속국도, 구마고속국도가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다. 동남쪽으로 비슬산맥의 주봉인 비슬산(해발 1,084m)과 청룡산(해발 794m), 상성산(해발 656m) 등의 높은 산지가 위치하고, 서북쪽으로는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진천천, 천내천, 명곡천, 기세곡천, 금단천이 낙동강과 합류하면서 넓은 선상지를 형성하고 있다.
설화리고분군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556-5번지로 대구에서 현풍으로 가는 5번국도와 접해있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해발 45m의 나지막한 구릉일대로 북쪽 구릉 일부는 영남문화재연구원(2002년)과 경상북도문화재연구(2006년)에서 발굴조사하여 삼국시대 석실분 및 석곽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주변유적으로는 조사구역에서 북동쪽으로 1.6㎞ 정도 거리에 성산리고분군과 화원토성, 동쪽으로 800m 지점에 명곡리고분군이 위치한다. 남서쪽으로 1.4㎞ 떨어진 구릉일대에 위치한 삼국시대 퇴뫼식 산성인 설화산성은 화원읍 설화동과 옥포면 기세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성으로 낙동강을 북서방향으로 바라보는 해발 200m의 산정부에 입지하고 있어 가까이는 화원토성, 멀리는 죽곡산성과 문산산성을 관망할 수 있다. 그리고 남서쪽으로 약 2.3㎞ 지점의 구마고속도로 옥포나들목 일대에 넓게 분포하는 구릉일대에는 본리리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본리리고분군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굴조사(2005년)에서 삼국시대 횡구식석실분, 수혈식석곽묘 등을 확인한 바 있다.
이렇듯 화원읍은 자연지리 및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써 삼국시대 산성을 비롯한 다수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Ⅲ. 調査方法 및 層位

1. 調査方法
조사구역은 2002년도에 유적보존사업을 위한 시굴(기초)조사를 실시하여 유구의 분포와 대략적인 성격이 파악된 상태였다. 착수시 조사구역은 잡목이 우거진 임야와 논경지로 이용되고 있어서 우선 벌목작업을 실시하고 Grid를 구획하였다.
Grid는 우선 조사구역의 구릉 능선부에 위치한 대형봉토분 2기가 관통하도록 남북방향의 기준선을 설정하고 10m 단위로 구획하였는데, 도굴된 M2호(횡혈식석실)의 현실방향이 어느 정도 파악되어 Grid 설정에 용의하였다. 유구가 확인된 토층을 파악한 후, 유구가 확인된 상면까지 전면 제토하여 유구를 확인하였으며, 봉토분은 잡목과 교란토를 제거한 후 4분법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2. 層位
조사구역은 잡목이 우거진 임야로 사면 아래쪽은 부분적으로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유적의 층위는 표토층-(황갈색점토층)-암반층으로 구분되는데, 유구는 모두 암반층에서 확인된다. 황갈색점토층은 사면아래쪽에서만 부분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Ⅳ. 調査內容

1. 遺構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석관묘 1기, 삼국시대 봉토분 7기·석실묘 8기·석곽묘 2기, 고려시대 수혈유구 1기, 고려~조선시대 토광묘 10기 등이다. 이 중 봉토분(M1호,M2호)은 횡혈식석실분으로 석실묘 및 석곽묘가 배장되거나 연접해 축조된 다장묘이다.

1) 청동기시대 석관묘
석관묘는 구릉 서사면에서 1기가 확인되었다. 개석은 남아 있지 않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152㎝, 너비 98㎝, 잔존깊이 36㎝이며, 석관의 규모는 길이 59㎝, 너비 20㎝, 높이 28㎝이다. 석관은 바닥에 길이 108㎝, 너비 34㎝의 판석을 깔고 그 위에 판석 4매를 ‘ㅍ’자형으로 세워서 축조한 후, 묘광과 석관 사이를 천석으로 보강하였다. 유물은 바닥에서 관옥 1점이 출토되었다.

2) 삼국시대
가) 봉토분
(1) M1호
M1호는 해발 43m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조사 전 봉분의 북쪽과 동쪽부분은 도로공사로 인해 호석과 봉분의 상당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다. 봉분의 규모는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호석 규모를 감안한다면 직경 16m 정도, 높이 2.8m이며, 연접된 배장묘를 포함하면 직경 16.2∼21m의 타원형으로 추정된다.
봉토의 층위는 크게 정지층-성토 1층-밀봉토-성토 2층-성토 3층으로 구분되며 구획성토는 확인되지 않는다. 봉토 조사과정에서 M1호(횡혈식석실묘)를 중심으로 위석식목곽묘(?) 1기와 석곽묘 4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M1, M1-1, 2호는 동시축조이며, M1-3호, M1-4, 5호 순으로 축조되었음을 토층조사에서 파악되었다.
M1호는 반지하식의 횡혈식석실분으로 봉분의 일부와 연도부가 도굴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매장주체부는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묘도는 두 차례 이상 사용되었다. 연도는 우편수식이며, 2매의 개석을 얹었다. 현실은 방형으로 길이 300㎝, 너비 330㎝, 높이 210㎝ 정도이다. 벽석은 30~60㎝의 할석으로 사용하였는데, 6∼7단은 수직으로, 그 위로는 모죽임하여 10단 정도 쌓고 2매의 천정석을 얹었다. 현실의 벽석 사이는 흑갈색니질점토로 보강한 후, 벽석과 천정석에는 부분적으로 회를 발랐다. 현재까지 확인된 시상은 후벽쪽에 2개, 우측벽쪽에 1개로 총 3개이다.
유물은 봉토에서 유개고배 10점, 유개대부완 2점, 유개단경호 1점, 연질옹 1점, 양두정 2점이 출토되었고, 묘도에서 유개호 1점, 현실에서 이식 1점, 유자이기 2점, 철부 1점, 도자 2점, 관정 2점, 폐쇄석 주변에서 관정 2점 등 현재까지 총 41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도굴갱 입구에서 다수의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① M1-1호
M1호 서편에 축조된 위석식목곽묘(?)로 M1호의 호석열 사이에 위치한다. M1-1호는 내부토의 ‘U’자상 퇴적양상과 개석이 확인되지 않는 점에서 위석식목곽묘로 판단되며, 목곽 외면을 30㎝ 내외의 천석과 황갈색점토를 사용하여 2~3겹으로 쌓으면서 봉토를 성토한 구조로 판단된다. 충진된 벽석을 참고하면, 목곽의 형태는 길이 305㎝, 너비 135㎝, 높이 128㎝의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주축방향은 N-66°-E이다.
유물은 내부 바닥에서 병 1점 부장하였고, 동단벽 바깥면에 접해서 유개고배 4점, 병 1점, 고배 1점, 방추 1점을 매납하였다.

② M1-3호
M1-1호 서편에 연접한 수혈식석곽묘이다. 석곽의 형태는 길이 316㎝, 너비 64㎝, 높이 73㎝의 세장방형이다. 주축방향은 N-53°-E로 등고선과 평행한다. 벽석은 20~40㎝의 천석을 눕혀서 8단 정도 쌓고 할석 7매를 개석으로 덮었다. 시상은 굴착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두향은 인골의 위치를 볼 때, 동향이다. 유물은 시신의 발치쪽에서 부가구연장경호 1점, 유개고배 4점, 유개단경호 1점, 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고, 허리 주변에서 철촉 1점, 도자 1점, 그리고 동단벽쪽에서 병 1점이 출토되었다.

③ M1-4․5호
M1-1호의 남쪽에 연접하여 축조된 수혈식석곽묘이다. M1-4․5호는 동시축조,로 M1-1호와 M1-3호의 봉토를 절취한 후 축조하였다. 석곽 규모는 M1-4호가 길이 250㎝, 너비 65㎝, 잔존높이 100㎝이며, M1-5호는 길이 90㎝, 너비 29㎝, 잔존높이 36㎝의 소형석곽이다. M1-4, 5호의 주축방향은 각각 N-72°-E, N-80°-E로 등고선과 평행한다. 벽석은 점판암의 판석을 주로 사용하여 눕혀쌓기하였다. M1-4호의 벽석은 15단 정도 남아 있는데, 길이 50~100㎝, 두께 10㎝ 정도의 판석을 사용하였고, M1-5호는 길이 30~60㎝, 두께 10㎝ 내외의 판석과 천석을 섞어서 축조하였다. 시상은 2기 모두 판석을 바닥전면에 깔아 마련하였다.
유물은 M1-4호의 서단벽쪽에서 유개고배 2점, 발 1점이 출토되었으며, M1-5호는 서단벽쪽에서 유개고배 2점, 단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2) M2호
M2호는 해발 43m 구릉 정상부에 위치하며, M5호와 중복되어 축조되었다.
M2호의 봉분규모는 연접된 M2-1호를 포함하여 직경 12~16.5m, 잔존높이 2.5m이다. 봉토의 층위는 M1호와 유사한데, 정지층-밀봉토-성토 1층-성토 2층으로 구분되며 구획성토는 확인되지 않는다. 봉토 조사과정에서 M2호(횡혈식석실묘)를 중심으로 횡구식석실묘(M2-1호) 1기와 소형석곽묘 1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축조순서는 층위상 M2호(M2-1호)→M2-2호이다.
M2호는 반지하식의 횡혈식석실묘이다. 현실 천정석 상면이 노출될 정도로 봉토의 유실이 심하며, 연도부와 현실 천정석은 도굴로 인해 훼손된 상태이다.
묘도는 두 차례 이상 사용되었으며 ‘八’자형이다. 연도는 중앙에서 약간 좌측벽쪽에 치우쳐 있으며, 연도 개석은 2매만 남아 있다. 현실은 방형으로 길이 270㎝, 너비 220㎝, 높이 210㎝이다. 현실벽석은 30~60㎝의 할석으로 모죽임하여 14단 정도 쌓고 3매의 천정석을 얹었다. 시상은 후벽에 붙여 현실바닥면보다 약간 높게 설치하였고, 잔자갈을 전면에 깔았다. 사상의 규모는 길이 220㎝, 너비 120㎝ 정도이다.
유물은 묘도부에서 개 1점이 출토되었으며, 현실 내 교란토 제거과정에서 다수의 토기편과 재갈이 파손된 채 출토되었다.

① M2-1호
M2호 북편에 연접한 횡구식석실묘이다. 도굴로 인해 묘도부와 벽석 일부가 훼손되었으며 폐쇄석은 남아 있지 않다. M2-1호는 M2호의 봉토를 절취한후 축조하였다.
내부토의 ‘U’자상 퇴적양상과 개석이 확인되지 않는 점에서 목개일 가능성이 높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321㎝, 너비 108㎝, 잔존높이 120㎝이다. 주축방향은 N-51°-E이다. 벽석은 17단 정도 남아 있는데, 길이 30~120㎝, 두께 10~20㎝의 판석으로 네모서리의 돌이 서로 물리도록 견고하게 가로쌓기하였다.
시상은 굴착면 전면에 잔자갈을 깔아 마련하였는데, 후벽쪽에 30㎝의 판석을 80㎝ 폭으로 깔아 별도의 시상을 만들었다. 1차 시상은 단벽방향과 장벽방향의 2곳에 시신을 안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후벽쪽 시상에는 확인된 경식의 위치와 치아의 크기로 보아 머리를 남향으로 한 유아가 안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2차 시상은 우측벽에 붙여서 30㎝ 내외의 비교적 편평한 천석을 사용하여 마련하였는데, 후벽쪽의 1차 시상을 침범하지 않았다. 2차 시상의 규모는 길이 260㎝, 너비 65㎝, 높이 10㎝ 정도이다.
유물은 전벽쪽에 대부장경호 1점, 유개고배 1점, 고배 3점, 개 4점, 단경호 1점, 기대 1점, 호 1점, 장경호 1점, 옹 1점을 부장하였고, 좌측벽쪽의 1차 시상면에서 유자이기 1점, 도자 점1, 철촉 2점, 꺽쇠 2점이 출토되었다. 경식은 후벽과 좌측벽 모서리부분에서 1점이 출토되었다.

(3) M3호
M3호는 해발 41m의 서사면부에 위치하며 봉분이 대부분 유실된 상태이다. 봉분의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규모는 직경 920m, 잔존높이 0.9m 정도이다.
M3호는 횡구식석실묘이며 동쪽과 서쪽에 석곽묘를 1기씩 배치하였다. 봉토는 정지층과 성토층 일부만 남아 있다. M3호와 수혈식 석곽묘인 M3-1, 2호는 동시축조이다. 도굴로 인해 석실 우측벽의 일부와 바닥이 훼손되었으며, 전벽은 거의 1단만 남아 있다.
현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336㎝, 너비 129㎝, 잔존높이 70㎝이다. 주축방향은 N-14°-W로 등고선과 평행한다. 벽석은 최대 5단 정도만 남아 있는데, 길이 20~70㎝의 할석과 30~40㎝의 천석을 혼용하여 네모서리가 물리도록 축조하였다.
묘도부는 유실되어 확인할 수 없으며, 연도는 중앙 연도식으로 우측으로 약간 치우쳐 있다. 연도의 규모는 잔존길이 60㎝, 너비 60㎝, 잔존높이 45㎝ 정도이며 폐쇄석 2개가 남아 있다. 시상은 후벽과 좌측벽에 붙여서 설치하였는데, 그 규모는 길이 250㎝, 너비 85㎝, 높이 10㎝ 정도이다. 시상과 벽 사이에는 잔자갈을 한 두겹 깔았다.
유물은 전벽과 우측벽 모서리부분에서 대부장경호 1점과 병 1점을 부장하였고, 후벽쪽 시상에서 철침 1점과 유자이기 1점이 출토되었다.

① M3-1호
M3호 동편에 위치한 수혈식석곽묘이다. 석곽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212㎝, 너비 41㎝, 잔존높이 40㎝이다. 주축방향은 N-23°-W로 등고선과 평행한다.
벽석은 20~40㎝의 천석을 사용하였으며 3∼4단 정도 남아 있다. 별도의 시상없이 암반면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유물은 북단벽쪽에서 연질옹 1점, 병 1점, 방추 1점, 남단벽쪽에서 대부장경호 1점이 출토되었다.

나) 석실묘
① 3호 석실묘
조사구역의 북편 사면부에 위치한 횡구식석실묘이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부정형이며, 규모는 길이 366㎝, 너비 278㎝, 잔존깊이 53㎝이다. 현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215㎝, 너비 104㎝, 잔존높이 35㎝이다. 주축방향은 N-32°-W로 등고선과 평행한다. 벽석은 1-2단만 남아 있는데, 25∼60㎝의 할석을 사용하였다. 묘도부는‘八’자형으로 벌어지는 형태이며, 폐쇄석 3개가 남아 있다. 시상은 현실 전면에 15~40㎝의 편평한 판석을 한 두겹 깔아 마련하였다. 시상 중앙에서 확인되는 인골(하지골)의 방향으로 보아 두향은 북향이다.
유물은 우측벽쪽에서 개 1점, 북동쪽 모서리부분에서 개 1점, 좌측벽 중앙부분에서 방추 1점이 출토되었다.

② 5호 석실묘
M2호 남서편에 위치한다. 묘도부와 폐쇄석은 확인되지 않지만, 규모와 시상형태로 보아 횡구식석실묘로 판단된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364㎝, 너비 226㎝, 잔존깊이 46㎝이다. 현실은 평면 장방형으로 규모는 길이 306㎝, 너비 110㎝, 잔존높이 40㎝이다. 주축방향은 N-31°-W로 등고선과 평행한다. 벽석은 1-2단만 남아 있는데, 길이 20~40㎝, 두께 10㎝ 내외의 판석을 사용하여 눕혀쌓기하였다. 시상은 절반정도만 남아 있으며, 동장벽쪽으로는 15~30㎝의 편평한 판석을 한 두겹 깔아 마련하였다. 시상이 마련된 동장벽에 접해 일부 확인되는 인골(두개골, 하지골)의 위치로 보아 두향은 남쪽이다.
유물은 남장벽쪽에서 고배 3점, 개 4점, 시상에서 고배 1점, 북단벽쪽에서 대부호 1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금동이식 1쌍, 금동대금구 세트, 금동대금구장식 4점, 도자 1점은 인골 주위에서 출토되었다.

③ 8호 석실묘
조사구역의 중앙 사면부에 위치한 횡구식석실묘로 판단된다. 묘광은 암반층을 완만하게 굴착하였다. 묘광의 평면형태는 부정형이며, 규모는 잔존길이 318㎝, 너비 225㎝, 잔존깊이 33㎝이다. 주축방향은 N-52°-E로 등고선과 직교한다. 현실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판단되며, 규모는 잔존길이 160㎝, 너비 100㎝, 잔존높이 41㎝이다. 벽석은 1-2단만 남아 있는데, 길이 20~30㎝의 천석을 가로쌓기하였다. 시상은 현실 전면에 5~10㎝의 편평한 할석을 한두 겹 깔아 마련하였다.
유물은 전벽쪽에서 유개고배 2점, 대부배 1점, 개 1점, 배 1점, 연질옹 1점, 좌측벽쪽에서 도 1점, 환두이형철기 1점, 중앙부분에서 도자 1점이 출토되었다.

다) 석곽묘
봉토분에 포함된 석곽묘를 제외하고 단독으로 축조된 수혈식석곽묘는 2기이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116∼162㎝, 너비 48∼108㎝, 잔존깊이 14∼20㎝이다. 석곽의 규모는 길이 70∼112㎝, 너비 23∼44㎝, 잔존높이 14∼20㎝이다. 벽석은 1호 석곽묘의 경우 할석과 천석을 혼용하였으며 단벽은 가로로, 장벽은 세로쌓기하였다. 2호 석곽묘는 할석과 천석을 혼용하였다. 1호와 2호 석곽묘는 판석을 바닥전면에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다.
유물은 2호 석곽묘에서만 출토되었는데, 북단벽쪽에서 유개대부소호 1점이 출토되었다.

2. 遺物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은 지표수습유물을 포함하여 청동기시대 관옥 1점, 삼국시대 230점, 고려․조선시대 유물 29점으로 총 260점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유물은 (유개)고배, 개, 기대, 대부호, (유개)단경호, 연질옹, (부가구연)대부장경호, 금동이식, 금동대금구, 금동대금구장식, 유자이기, 도, 환두이형철기, 도자, 철촉, 철부, 꺾쇠, 관정, 방추 등이 출토되었다. 개는 57점으로 가장 많이 출토되었으며 대부분 고배와 세트를 이룬다. 개는 꼭지의 형태에 따라 대각축소형, 단추형, 굽축소형, 보주형으로 구분되는데, 이른 단계의 대각축소형은 M1-1호 봉토에 매납된 유물에서만 확인되며, 늦은 단계의 보주형은 M1-1호 남벽외면, M2-1호, M7호, 3호 석곽묘에서 출토되었다. 개신부의 문양 시문기법을 살펴보면, 종집선문+횡침선문(M1호 봉토매납유물), 긋기 삼각집선문+콤파스문(M1-1호 남벽매납), 긋기 삼각집선문+압인 반원점문(5호 석실묘), 긋기 삼각집선문+압인 원문(8호 석실묘), 압인 삼각집선문+압인 이중원문(5호 석실묘), 압인 삼각집선문+압인 수적형문(M7호)의 문양조합을 보인다.
고배는 42점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단각으로 작은 투창을 뚫었거나 무투창으로 기형상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M1 봉토매납유물 중에서 배신부에 종집선문이 시문된 이단투창고배가 확인되어 주목된다. 이 이단투창고배는 대각축소형 꼭지에 종집선문+횡침선문의 문양구성을 보여 본 유적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판단되며, M1호와 M1-1호의 부장유물과는 시기차를 보인다. 이는 피장자가 보관하던 것이 사후에 매납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기양식토기를 대표하는 부가구연대부장경호는 M1-3호와 M2-1호에서 출토되었다.
금동유물은 이식 1쌍, 대금구세트, 대금구장식 4점 등 5호 석실묘에서 출토되었다. 그리고 M1호 현실 내에서 이식 1점, M2호 주변 지표에서 이식 1점이 출토되었다. 이식은 모두 단면원형의 금동세환이식으로 성산리고분군 서4호묘 출토품과 유사하며, 금동대금구는 역심엽형의 과판을 갖춘 누암리형대금구로 자금이 있는 창녕 계성 A지구 1호분 출토품의 바로 후행하는 단계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출토된 토기를 보면, 후기양식토기에서 통일기양식토기로 이행하는 단계까지 확인되므로 무덤의 조성시기는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초로 판단된다.

Ⅴ. 調査成果 및 意義

1. 본 유적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무덤은 봉토분 7기, 석실묘 8기, 석곽묘 2기 등으로 봉토분에 배장되거나 연접된 무덤을 포함하여 총 27기이다. 묘제별로 구분하면 횡혈식석실분 3기, 횡구식석실묘 12기, 횡구식석곽묘 1기, 수혈식석곽묘 10기, 옹관묘 1기 등이다.

2. 이번에 조사된 설화리고분군은 2002년 우리 연구원에서 조사한 설화리고분군과 이어지는 동일 구릉상에 입지하며 묘제와 부장유물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단각고배의 형태와 개의 문양으로 볼 때, 무덤의 조성시기는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초로 파악된다. 이 시기는 화원지역의 고총고분인 성산리고분군과 중소형의 본리리고분군 등 대부분의 고분군에서 묘제가 석곽묘에서 석실묘로 바뀌면서 고총고분이 쇠퇴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설화리고분군에서는 중형의 석실분이 축조된다는 점에서 설화리고분군 축조집단의 우월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3. M1호와 M2호는 도굴로 인해 일부 훼손되었지만, 화원 및 대구지역에서 현실, 연도부, 천정부, 봉토 등의 무덤 구조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횡혈식석실분으로서 이 지역 석실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M1호분 전경
조사구역 위치 및 주변유적분포도
유적 원경(남)
유적 전경(서)
청동기시대 석관묘
M1호 및 M1~5호 조사중 전경(남)
M2호 및 M2-1호 조사중 전경
M2-1호 전경
M3호 전경
3호 석실묘
5호 석실묘 금동대금구 출토상태
5호 석실묘 전경
8호 석실묘 전경
8호 석실묘 유물출토상태
출토유물1
출토유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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