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보고서

大邱 太平路2街 4-1遺蹟 대구 태평로2가 4-1유적

책수 : 273

발행일 : 2025.12.16.

발행기관 : (재)영남문화유산연구원

페이지수 : 104

규격 : A4변형판(210×284)

조사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2가 4-1번지 일원

조사면적 : 290㎡

조사연유 : 건물신축에 따른 구제발굴

발굴조사자 : 하진호,이석범,이수정,권용규,이건원,정병욱

집필,편집 : 이석범,이수정,이건원

조회수 : 149

유구종별/시대/유형및기수/중요유물/특기사항

[생활유적]
조선시대 - 수혈유구 2기, 집석유구 1기, 적심 4기, 주혈 5기

개요

대구 태평로2가 4-1유적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2가 4-1번지로 북동쪽으로 약900m정도 떨어져 신천이 남류하여 금호강과 합류한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신천의 범람에 따라 형성된 충적대지가 넓게 발달한 지형이다. 해당 지역은 도심 시가지 내에 포함되며, 일제강점기부터 2024년까지 건축물이 축조되어 원지형이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 수혈유구 2기, 집석유구 1기, 적심 4기, 주혈 5기 등 총 12기의 유구가 조사되었고 백자 저부, 백자 잔, 암키와 등 총 28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백자의 굽형태와 기와의 문양으로 보면, 17~19세기에 해당하는 유물로 생각되며, 유적이 위치하는 조선시대 칠성리는 『대구부호적』에 1747년에 처음 등장하며, 1903년 대구부지도에서도 확인된다. 1747년에 발간된『대구부호적』에서 확인되는 칠성리의 가호수는 75호 정도이며, 인구수는 485명이다. 경상감영과 대구부아, 중영과 진 등 지방행정관에 근무하는 양반, 중인계층의 향리, 군관, 양인계층의 관영 수공업에 소속되어 일하는 관청 소속 장인과 천인, 양반과 중인에 속한 천인이 주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칠성리 마을은 대구읍성이 축성된 이후에 관청에 근무하는 양반 및 향리, 군관 등과 그에 따른 천인의 주거 필요에 의해 발전한 마을로 추정된다.
태평로2가 4-1유적의 AMS연대측정에서 16~20세기에 걸친 결과를 얻었다. 20세기 초 지도에서도 유적에 위치하는 곳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대구부호적』에서 칠성리라는 지명이 18세기 중반부터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이전에도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유적의 중심연대는 출토유물의 연대인 17~19세기로 추정된다. 대구 태평로2가 4-1번지유적은 17~19세기의 대구 칠성리에 살고 대구읍성내에 위치한 관청에 근무하던 양반 또는 중인들이 거주했던 생활유적으로 추정할수 있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대구읍성 외곽의 칠성리마을 일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유적을 통해 조선시대부터 근ㆍ현대에 걸쳐서 이 일대를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생활을 영위하였음을 알 수 있었고, 조선시대 지방생활사를 연구하는 기초자료로 그 의미가 크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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